아이는 그렇게 전학을 했다.
새 학기가 되니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수업 중일 텐데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놀라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아~ 어머니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요. 아이가 반장선거 후보에 올랐는데 전학 안 가세요?'
'네?'
'이사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전학 계획이 있으시면 지금 반장선거를....'
같은 지역에서 단지만 바꾼 상황이라 우리에게는 전학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그 무렵 엄마의 고희를 맞아 가족들 간 조촐한 식사를 나누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좋지 않았던 모녀 관계는 언니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며 서로가 없는 형제자매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생신이기에 서로가 마음을 내어 식사 자리를 갖기로 하였지만 언니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생신을 맞은 아침은 마침 휴일이라 아이 먼저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나는 천천히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먼저 출발한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시는데 전화도 안 받아'
내가 내려가는 사이 아이는 할머니와 연결이 되었고 그 상황을 다시 나에게 알려주었다.
'엄마, 할머니는 벌써 이모랑 식당에 가 있고, 지금 이모가 데리러 온데'
'???'
'너 뭐 하는 거니? 왜 애만 이곳으로 보내!'
'뭔 소리야! 연락 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으니까 우리끼리라도 식사하려고 지금 내려가는 길이잖아'
'연락이 없으면 네가 하면 되지 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이렇게 시작된 언니와의 통화는 길어졌다. 그만큼 언성도 높았다.
분명 식사 중 아이를 데리러 온 것 같은데 아이랑 같이 있는 상황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형부도 옆에 계시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 마음의 소리들만 내뱉고 있었다.
'너 이사를 했으면 전학 가는 게 당연하지 누구 힘들게 하려고 전학은 안가! 그거 고스란히 엄마 몫이잖아!
너 우리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니네 엄마한테 잘해라!'
이것이 언니와의 마지막 통화기록이다.
그다음 날 아이의 전학 수속을 마쳤다.
1살 많은 언니야!!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세대차이가 나서 지금 시대를 이해 못 하는 말을 한다고 하면 그나마라도 아주 조금 이해를 하겠지만 같은 세대를 살면서 너 그러는 거 아니다! 그리고 너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이제는 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은 가려서 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그대로니! 그리고 너네 엄마 내 엄마를 구분하는 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이니!! 그런데 너는 너네 엄마한테 잘하고 있니?
엄마...
그날 제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언니랑 큰소리로 다툰 것보다 더 서운하고 아팠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밥을 먹을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상태로 갈 수가 없으니 식사 편하게 하시란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어요. 식사까지는 아니어도 전화는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엄마의 생신이 아니었다면 내려가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특별함으로 만나는 걸 엄마도 알고 계시면서 엄마 또한 제게 연락 한 번 없으셨죠.
궁금해요. 엄마의 생신에 작은 딸 없이 큰 딸 하고만 식사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건지.
'달랑 둘 뿐인데'라는 말로 언니랑 친하게 지내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엄마가 큰 딸 앞에서 저를 그렇게 대하는 이상 우리 관계는 개선될 수 없어요. 그거 되돌리려면 지금껏 보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엄마도 큰 딸 앞에서 저에 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잖아요. 여전히 전염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니까. 이제 저에게만 못됐다 하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 저 전염병 환자 아니에요.... 제발....
어느 사이 10년도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때 깊이 박힌 상처가 여전히 아파 눈물을 쏟아낸다.
이제 조금 상처가 아물어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조금 소리 내어 본다. 이 눈물로 상처가 조금 더 아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