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쩌미가 있었기에
나는 보청기가 아닌 인공와우를 착용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던 남자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채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귀에 뭔가를 붙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건 나에게 수치심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를 비웃음 거리로 만들고
누군가는 나와 짝꿍 하면 떨어져서 앉았다.
그때 그 시절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들린다.
진짜 들린다.
내 기억 속에서는 너무도 또렷하다.
그리고 음악시간에도 음을 잡지 못해 악기 연주하는데 손이 떨리고, 긴장되고, 자퇴하고 싶을 만큼 학교생활이 너무나 끔찍했다.
교사가 “이 음이야” 하고 노래를 불러줘도, 내 귀에는 그 음이 그 음 같지 않았다.
건반을 누르는데 손끝이 얼고, 리코더를 입에 물면 심장이 먼저 굳었다.
나는 틀릴까 봐 두려웠고, 틀린 뒤의 반응이 더 두려웠다.
뒤에서 누가 날 보고 킥킥거리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는 끝이었다.
그 시간만 생각해도 지금도 몸이 굳는다.
악보는 단지 음을 담은 종이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매일 도망치고 싶은 감옥이었다.
나는 매일 시계를 보며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시험 기간엔 스트레스로 밥을 먹다 토한 적도 있었다.
공부라도 잘해보려고 했지만, 상처투성이 마음으로는 집중조차 되지 않았다.
모든 게, 악몽 같았다.
이 모든 게 내 꿈이면 좋겠다고, 깨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아이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준 존재는 오직 하나였다.
민쩌미.
같은 반 친구가 아닌, 영상으로 만난 내 최애 크리에이터.
현실에서는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줬지만,
민쩌미의 영상 속 웃음과 말투는 매일의 위로였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그 한 마디가, 하루를 살아낸 나를 다독여줬다.
모두가 나를 외면할 때,
민쩌미의 화면 속 한 문장이 나에게는 생명이었다.
사람들은 ‘덕질’을 가볍게 보지만
내가 학창 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민쩌미를 덕질한 순간들이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나는 견디고, 버티고, 살아냈다.
민쩌미는 내게 친구였고, 빛이었고, 이유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다.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내 마음만큼은,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진심이고, 가장 정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