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 가족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정다정한
울 엄마와 혈기 왕성한 삼촌, 그리고 나 호연이와 여동생 하연이, 누나 노연이가 한집에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아 참! 가장 중요한 우리 할머니를 빼먹을 뻔했네요. 정확히 말해서 할머니는 우리랑 같이
살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를 챙겨 주시는
주인님이시니 꼭 소개드려야 할 사람입니다.
넓은 마당을 사이로 두고 우리 집과 할머니집이
있습니다. 물론 그 집에는 할아버지도 함께 계세요. 할머니는 성격이 괄괄하지시만 웃음도 많은 귀여운 분이죠. 반면 할아버지는 무관심하십니다
할머니가 끼니마다 음식 찌꺼기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죠. 삼촌의
몸은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땅으로 처 박는 것을 반복하며 할머니를 반깁니다.
먹을 것을 보고 흥분하는 삼촌의 행동에 심기가 불편해진 할머니는 욕설을 시작합니다.
"야이 이 개놈의 새꺄!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시면서 재빠르게 삼촌 밥그릇에 찌꺼기를 부어줍니다.
때로는 머리를 쥐어박힐 때도 있어요. 하지만 삼촌은 이미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욕을 먹든 말든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삼촌의 광기 어린 식탐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다음은 아직 아기인 우리 밥그릇에는 미음처럼
생긴 것을 덜어줍니다. 소심한 우리는 조금 떨어져
있다가 할머니가 엄마한테 옮겨가신 뒤에야 다가
가서 밥을 먹습니다.
마지막 차례인 울 엄마. 배가 고플 텐데도 우리 들이 밥을 잘 먹나 이리저리 살펴본 후에야 자기 밥을 먹습니다. 먹는 도중에도 안심이 안되는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볼 때도 많아요.
할머니는 우리에게 먹이를 주고 바로 안 가세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리 가족들이 아침밥을 먹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십니다. 마치 자식입에 먹을게 들어가는 것을 보는냥 흐뭇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조금씩 깔짝대며 먹는 우리 삼둥이에 비해,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는 듯 허겁지겁 먹던 삼촌. 벌써 밥그릇을 거의 다 비우고 곁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잔잔하게 웃음을 띄우며 우릴 바라보던 할머니는
"야 야~~ 얼른얼른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이런 말을 남기고 할머니의 집으로 사라집니다.
도대체 누구를 칭하는 말일까요?
우리에 모든 이름은 "야"입니다.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련된 이름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 흔한 누렁이 바둑이도 있는데..
삼촌을 부를 때도 야~ 엄마를 부를 때도 야~~
우리를 부를 때는 야~라는 말과 쫏쫏쫏이라는 혀를 차는듯한 강아지를 부를 때 내는 의성어를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똑같은 야~이지만 악센트가 다르기는 해요
삼촌을 부를 때는 가장 쎄고 빠르게 야~~
엄마는 부를 땐 크게 부르지만 정답게 야~
우리들을 부를 땐 부드럽게 야야~~
그 미묘한 차이를 우리 가족들은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헷갈려서
할머니가 "야~"라고 하면 가족 모두가
꼬리를 흔들며 할머니 곁으로 달려가지요
그래서 난 혼자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아랫마을 강아지들도 다 이름이 있는데
우리 가족만 이름이 없는 것이 은근히 속상했어요
엄마와 삼촌 이름까지 짓는 것은 어쩐지 주제넘은 것 같아서 우선 우리 삼둥이 이름만 지었어요
누나는 누런 털을 가지고 있어서 노연이라 지었고요. 여동생은 하얀 털을 가지고 있어서 하연이, 나는 하얀 바탕에 귀와 등 쪽으로 갈색이 섞여있어서 호연이라 지었어요
호랑이의 얼룩무늬처럼 딱 닮지는 않았지만 난 앞으로 멋진 사내로 자라날 것이니 호랑이의 기백을 닮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이름에 (연)이라고 돌림자를 넣은 것은 동네 이름인 (연이리)의 연을 따서 연 자를 넣은 것입니다. 이렇게 심오하게 이름을 지어 놨어도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할머니는 여전히 야~라고 부르실 게 뻔합니다.
바람이 감미롭던 늦은 봄날 이른 아침이었어요. 할머니는 여느 날처럼 마당으로 나오셨어요. 밥이라도 들고 나오시나 하고 봤더니 밥그릇 대신 전화기가 들려 있었어요.
" 벌써 몇~달 됐지~ 암컷 두 마리에 수컷 한 마리
허연 놈, 누런 놈, 얼룩진 놈~ 아직 새끼니까
귀엽고 이쁘지. 아! 그리고 먼저번에 너도 봤잖아! 에미 말고 수컷 한 놈 더 있는 거. 건넛집에서 도시로 이사 가면서 개는 못 데려간다고 하면서 그때 어중간한 새끼를 주고 갔는데 지금은 엄청 컸지.
그놈은 어떻게 된 것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 천지분간 못하고 난리를 피워대. 도대체 정신 사나워서 팔아먹든가 해야 되것어~"
어! 지금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우리 가족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져서 귀를 쫑긋 세웠어요
" 뭐? 새끼 아비? 몰러. 에미가 동네 어떤 놈하고
바람을 폈는지. 내가 아랫마을 진수할멋네 놀러 갔을 때 데리고 갔었는데 집에 올 때까지 뵈지 않더니만 그때 그랬나? 첨엔 새끼 밴 줄도 몰랐다. 자꾸 살이 오르는 것 같더니만ᆢ 어느 날 지 혼자 새끼들을 낳았단다. 세 마리"
"도시 것들처럼 호사스럽게는 못 키우지. 에미 젖
겨우 떨어졌는데. 뭐라고? 새끼 달라고?
수놈 가져가라. 그놈이 가장 똑똑해. 씩씩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에 가져다가 키우면 네가 주인인 줄 알고 잘 따르것지~"
할머니는 그 뒤로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하시다가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 녀석들 밥 줘야겠다."
하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난 할머니가 들어가시고 그 짧은 순간에 적지 않은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할머니집 마당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난 단 한 번도 아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수선스럽지만 재미있는 삼촌과 다정한 엄마가
있어서 아빠의 빈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어요
아빠 얘기를 함구했던 엄마가 미혼모였다니 ᆢ
좋든 싫든 한 번의 실수로 아빠 없는 자식이
생긴 건데 엄마는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나만 알고 삼둥이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괜한 소리를 해서 마음 여린 누나와
여동생의 가슴에 상처 주는 게 싫으니까요.
엄마한테도 따로 묻지 않을 거예요. 엄마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서입니다.
그보다 더 불안한 현실은 삼촌과 내가 어딘가로 팔려 간다는 사실이었어요. 할머니는 내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셨지만 난 다 압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저미는 슬픈 일인것을요.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꽤 여러 날이 흘렀어요.
어떤 사람도 할머니 집을 방문하지 않았죠.
건넛집이 이사 간 후 폐허가 되어 버린 그 집 마당에 무수하게 자라난 잡초 때문인지 할머니집은 더욱 적막해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들 바쁜가 봅니다. 형제들이나 자녀들도 발길이 뜸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끔씩 마을 회관에 다녀오신다며 중절모를 쓰고 나가시는 것 이외에 두 달 넘게 너무도 조용히 지나갔어요
난 그 일이 있고 나서 멀리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불안했습니다. 혹시 날 데려가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죠. 하지만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을 정리할
무렵이었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할머니 집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바짝 긴장을 하고 현관 쪽을 바라봤어요. 중년 남 녀가 할머니집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엔 남녀와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같이 나오십니다.
할머니를 부축하며 젊은 여자가 말합니다
" 엄마! 큰 병원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 말아요. 여기 다시 오실 때는 깔끔하게
다 낫을 거라니까."
그 말에 평소 표정이 없던 할아버지가 근심 어린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할머니는 힘 없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합니다
" 전에 얘기했던 놈이 이 놈이다. 나중에 가져다가
키워라" 하면서 할머니 발 밑에서 할머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지목합니다. 난 다음 상황이 궁금해 할머니와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죠.
여자는 대답도 안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자동차에 태웠고, 자동차는 금세 흙먼지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엄습해 오는 불안감은 나의 입양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건강이 더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밖으로 나와 큰소리치며 야단도
잘 치던 할머니가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지 않았고, 간혹 우리들 밥만 챙겨주고 말없이 집안으로 들어가셨던 게 기억났어요.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우리들의 밥을 챙겨 주셨지요.
어디가 많이 편찮으신 걸까?
할머니와 여자와 함께 집을 떠나고 난 후. 우린 무인도에 표류된 미아처럼 막연하기만 하여 어찌해야 할지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할머니의 부탁이었는지 아랫마을에 사시는 친척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끼니를 챙겨주러 하루에 한 번씩 방문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하루에
한 끼밖에 못 얻어먹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마음도 아팠습니다. 극도의 불안감에 엄마를
찾기도 했지만 엄마 역시 멍한 눈망울로 자꾸만 할머니집 현관을 바라봤습니다. 할머니가 오시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될 거라 믿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할머니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오시고 내가 여자집으로 입양된다 해도 이보다 더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앞을 모른다는것. 막막하다는 것이, 희망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더 많은 생각이 기운다는 걸 첨 알게 됐습니다.
곧 돌아오리라 믿었던 할머니는 한 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 열흘이 지나던 날
먼저날 봤던 자동차가 다시 외딴집 마당에 나타났어요. 반가워 단걸음에 달려가 자동차 앞에
섰습니다.
남자가 먼저 내렸고 할아버지가 어두운 낯빛이 되어 여자와 함께 내렸어요. 세 사람 모두 무표정입니다. 할머니는 차 안 어디에도 없었어요. 할머니는? 할머니는?
난 궁금하고 불안하여 멍멍 짖어 보았습니다.
그제서 여자는 나를 발견하고는 " 아이고
살아있었네. 이 개들 불쌍해서 어째! 빼빼 마른 것 좀 봐봐!" 하면서 우리들을 쳐다봅니다.
남자는 짐을 들고 먼저 들어갔고 여자는
할아버지를 부축하면서 말합니다
" 아버지! 저희 집에 계시라니까 엄마도 안 계신
이 집에서 어떻게 혼자 사시려고 이렇게 고집이세요.?"
할아버지는 힘들게 걸음을 옮기면서 여자에게
말합니다
" 아니다. 난 네 엄마 생각하면서 여기서 살 거다
죽을 때까지 이 집에 있을 거야. 네 엄마의 손 길이 묻어 있는 이집을 어떻게 떠나니? 내 걱정 말고
넌 박서방이랑 어서 가거라."
여자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현관으로 들어가고
먼저 짐을 가지고 들어갔던 남자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웁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우리
가족들은 할머니를 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시끄럽다고 우리들한테 신경질적으로 화를 냅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발로 땅을 쳐가며 욕을 합니다. 우린 주눅이 들어 신음하듯 조용히 짖었습니다.
크응 크응 크으응~
남자는 곧바로 자동차와 함께 떠났고 여자는
며칠 동안 할머니집에 머물렀어요. 여자는 끼니때마다 우리에게 밥을 줬습니다. 할머니처럼
우악스럽거나 소리도 지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도 주지 안았어요. 가끔씩 밖으로 나와 먼산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밖에 나와 있다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 응. 돌아가셨어. 두 달 넘게 집에서 아프셨던 것
같은데 나한테 말도 안 하셨지. 상태가 너무 안 좋으실 때 아버지가' 네 엄마 죽는다'고 나한테 전화와 서야 그때 알았지. 근데 그 전화받고도 바로 달려오지 못했어. 작은애 바이올린 대회가 있어서. 울 엄마 원래 그래.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안 하셨어. 자식 신세 지기 싫다고 그러셨지. 아마 그 이전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을 거야. 내가 못된 자식이지. 나 사는데 바빠서 내 새끼들만 챙기느라고. 울 엄마가 그 지경 되는 줄도 모르고 ᆢ
감기가 심하신 줄만 알았지. 큰 병원 갔더니 이미
말기가 돼서 손도 못 쓰게 됐는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패혈증이 와서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며칠을 못 버티시고 가신 거야 ᆢ
넌 부모님한테 잘해 ᆢ
아버지도 문제야! 내가 여기서 살 수도 없고
아버지는 우리 집에 절대 안 가신다고 하면서
박박 우기기만 하시니 ᆢ
나도 며칠 있다가 가야지 ㆍ"
누군가와 긴 전화를 끝내고 여자는 그 자리에
앉아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여자 곁에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큰소리로 한참을 울다가 작은 흐느낌으로 바뀌면서
문득 우리 쪽으로 눈을 돌린 여자가 말합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할아버지도 예전 같지 않아서
너희들 모두를 돌보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너네들도 여기서 떠나야 할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정지된 듯 모두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슬픔도 감당하기
힘든데 우리 가족의 해체 위기까지 겹치게 된 것입니다.
다음날 오전. 친척 아주머니가 할머니집으로 왔습니다. 첫 번째로 울 엄마와 여동생, 누나까지 그 집으로 입양되어 갔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암컷만을 원해서 그렇게 구성되어 간 것입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누나와 여동생은 엄마랑 같이 살게 되어서.
목 줄을 한 엄마와 그 뒤를 누나와 여동생이 따라갔습니다. 친척 아주머니의 손에 억지로 끌려가는 엄마는 나를 돌아보지 못했고 누나와 여동생은 나를 몇 번 뒤돌아 바라봤습니다.
난 여자의 품에 안겨 떠나가는 엄마와 누나 여동생의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내가 지은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전혀 다른 이름으로 그 아주머니 집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날 오후 오토바이를 탄 개장수 아저씨가 삼촌을
싣고 갔습니다. 그 개장수 아저씨는 보신탕집에
갖다 줄 거라며 여자에게 돈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삼촌에 운명을 어떤 식으로든 가늠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삼촌은 사각으로 만들어진 철망 속에 갇혀서 떠나갔습니다. 울부짖는 삼촌의 목소리는
조용한 외딴집 마당과 들판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삼촌을 부르는 나의 작은 목소리는 삼촌의 처절한 절규에 묻혀버려 들리지 않았습니다. 산모퉁이 돌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도 삼촌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메아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 운명이 정해질 차례가 됐습니다. 여자와 함께 도시로 가게 되는 걸까?
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모두
떠나간 빈집에 나 혼자 남으라고 합니다.
여자가 내게 말했습니다
" 할아버지 잘 지켜 드려야 돼. 너 혼자니까
할아버지도 너를 잘 챙겨 주실 거야. 함께 있으면
할아버지도 너도 적적하지 않을 거다.
할아버지 잘 부탁한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말합니다
" 참! 너 이름이 뭐였지? 울 엄마가 너네 이름을 말한 적이 없는데 ᆢ 이름도 없이 지금까지 살았구나. 이름 짓자. 뭐가 좋을까? 아하! 얼룩무늬니까 호랑이?
아니 이 마을에 터줏대감으로 할아버지랑 오래오래 살 거니까 호연이가 좋겠다. "
그러면서 갑자기 내게
"호연아~~"
하고 부릅니다.
난 너무 갑자기 불려지는 이름에 멍하고
여자를 바라봤습니다. 내가 지은 이름이었지만
한 번도 불려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여자는 여러 번 반복하면서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앞 발을 달라고도 했으며 먹을 것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해체되고 며칠이 더 흐른 뒤에야
여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가 앞으로 혼자 살아가기에
불편함이 없이 정리해 놓고 가느라고 그랬나
봅니다.
여자가 가고 난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오셨어요.
내 아침밥을 들고 나오십니다. 내 밥그릇에
밥을 부어주면서 말합니다
"호연아~ 밥 많이 먹어라"
난 내 귀를 의심했어요. 여자가 며칠 동안
호연이라 불러줘서 익숙하긴 했지만 할아버지
입에서 호연이라고 불려진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우리 가족
에게 말을 붙여 본 일이 없는 할아버지였거든요.
많이 외로우신가 봅니다. 나를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난 할아버지를 향해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한 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사건들
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합니다.
난 씩씩한 호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