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2. 2024

3살

다니다 보면 코스모스가 나보다 키가 컸다.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은 거대했고, 나는 오로지 엄마의 손에 의지하며 걷게 되었다. 아직도 오른발, 왼발이 헷갈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만 있으면 모든 걸음이 편안해졌다. 걸음걸이뿐만 아니었다. 기어오르는 나비도, 올챙이의 단잠도, 무엇보다 돈벌레의 수세미 같은 더듬이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복되는 산책길을 외웠다. 외우고 또 외웠다. 길에서 오는 시츄 강아지부터 나보다 몸집이 큰 래브라도 강아지도 다 한 번씩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손을 열심히 흔들다 보면 주인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름을 물어보았다. "햇살"이라고 대답했다. 해보다 더 눈부시게 살라는 말에서 착안된 이름이었다.


곧이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그 동생은 아직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해 유모차에 타고만 다녔다. 그의 생각이 어디까지 도달했을지 모르지만, 단순하게 침을 흘리면서 하는 발장구 정도만으로 충분한 인생을 꾸리고 있었다.


햇살의 따가움은 햇살에게 완벽한 상호작용을 했다. 햇살이 따갑게 얼굴을 내리쬐면, 엄마가 발라준 선크림이 그 햇빛을 흡수하면서 놀았기 때문에 절대로 무섭지 않았다. 그러니 계속해서 볼이 오동통한 채로 햇살을 머금고 있을 수 있었다. 빨간 원피스에 체크 하얀색 무늬가 곁들어졌다. 어느 바다를 보러 갔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파도가 휘몰아치면서 엄마의 손을 또 열심히 붙잡았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소라게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소라게의 위태로운 여정을 살려주기 위해 발로 밟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햇살은 웃어넘겼다. 엄마는 가끔 그러면 안 된다면서 다시 소라게를 찾아 바다 속으로 넣어주곤 했다. 반복적으로 흘러나갔다가 들어오는 바다 속에 들어가면 두통이 있을까 봐 모랫속으로 넣어준 건데도 말이다. 햇살의 마음이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햇살은 식당에 갔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모든 반찬을 쳐다보며 징그럽게 느껴졌다. 입안에 넣어서 우걱 씹어 먹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식감일지도 모르겠고 부드럽지도 않을 게 뻔했다. 그러자 엄마가 주문해 준 계란프라이 하나가 나왔다. 그 완벽한 계란프라이 옆에 꼼짝없이 포크를 잡아 찢어버렸다. 노른자가 터져 나와도 그 즙을 후르륵 마셨다. 영롱한 태양의 즙을 마시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니 동생과 더불어 카시트에 앉아서 잠이 쏟아졌다.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낯선 이가 두렵지 않고 햇살은 아장아장 웃으며 엄마에게 좋은 말만 쏟아내주었다.
"엄마랑 오니까 좋아."
"엄마는 햇살이랑 노니까 좋아?"
"햇살은 맛있는 거 먹고 가고 싶어."
"햇살은 좋은 일 많이 할 거야."
등의 말들로 가득한 채로 말이다.


햇살은 그렇게 노란 햇빛이 주황색으로 변하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때에 잠들었다. 눈을 가렵게 했지만 그래도 햇살은 내일도 만나기 때문에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된다. 햇살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잠을 잤다. 동생도 옆에서 코 고며 세근세근 자고 있었다. 그 하모니에 맞춰 햇살도 자고 있었다. 피곤한 엄마는 조용하게 운전해주었다. 그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해변가에서 모래를 밟다가 소라게를 넣어준 날이.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 어린 수필 같은 수필을 적어나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