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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5. 2024

골목길에 이상한 아저씨

수필같은 소설: 위협하다가 넘어지길 바란다

나는 어릴 적에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이가 15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교복을 입고다니는 때였고 저녁때까지 학원 혹은 학교에서 공부하다보니까 허약하게 자라게 되었다. 배는 배불뚝이처럼 나와서 셔츠를 입으면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왔는데 다리랑 팔은 앙상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리 힘세다는 말을 듣지 않고 살았다. 나는 참고로 남중을 나왔다.


그렇게 어느날 저녁이었다. 엄마가 원래 나를 데리러온다고 했는데 직장에 야근이 급하게 잡히는 바람에 나를 데리고 올 수 없다고 전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학원을 빠지고 집에 가거나아예 늦게까지 학원에 붙잡혀서 공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보통의 엄마들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워낙 우리집은 학원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였었던지라 내가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된다 식이었다. 대신에 빠지는 날이 많아지는 학원이면 꼼작달싹없이 학원을 끊게 만들었었다. 나는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았다. 저녁밥을 집에서 먹을 필요없이 사 먹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었고 학원에서 집어주는 쪽집게강의 덕분에 성적이 잘 올라가는 편이었어서 학원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 가거나를 택해야했는데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 마음에 늦게까지 학원에 남아서 있기로 결정했다. 그때 저녁으로 우리는 친구들이랑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그때 먹었던 삼겹살이 너무나 맛있었다. 어린 나이인데 손님으로 불러주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좋았고 우리가 쌈싸먹으면서 먹었던 고기는 육즙이 튀어나올 정도로 저돌적인 음식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니까 베인 기름냄새가 온몸에 적신 채로 학원 수업을 갔다. 그러자 학원 선생님께서 우리보고 씻고 오던가 페브리즈로 적시고 오던가 선택하라면서 남자 4이서 차례대로 수치스럽게 돌아가며 페브리즈 공격을 받았다. 그 육향이 꽃향으로 변신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업을 듣고 10시가 될 때까지 졸면서 몰래 쪽지를 돌려가며 낄낄거렸다. 그런 학원 선생님은 지적하기 귀찮았는지 그냥 우리를 보고 냅두었다. 나는 그 시간이 재미있었다.


10시가 되자마자 끝나는 학원. 그리고 집까지 가려면 멀리 전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탄 다음에 걸어서 15분정도 걸어가야만 했다. 우리집은 서울의 변두리여서 대치동에서 집까지 가려면 다른 친구들보다 먼 편이었다. 그래서 일부로 친구들은 은마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집은 맞벌이를 해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그렇게까지 대치동 아주머니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천천히 전철에 올라 대화행 열차를 탔다. 타고 타다보면 한강을 지나치게 되고 그러자 환승하게 되는 장소가 나온다. 거기서 환승해서 올라서 또 한참을 열차 안에서 음악과 함께 지나갔다. 나는 그 당시에 들었던 케이팝의 난해함을 좋아했다. 컨셉을 만들어서 올라오는 아이돌의 무대와 여자연예인들의 애교에 무시못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곧 전철에 내려 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도 후미진 곳에 있는 정류장이라 밤에 버스를 타려면 스산한 느낌이 가끔씩 들었다. 그날은 어린 아이 한명도 그 근처에 없었고 오로지 취객들만이 돌아다니면서 밤거리를 누볐다.


그 아저씨들 중 한명이 나의 어께를 치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지나쳤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떨구어지고 말았다.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져서 나는 쳐맞을거만 같은 분위기였다. 영화 속에 갑자기 사라지는 소년이 내 자신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그 아저씨는 나를 그렇게 치기만 하고 지나쳤다. 나는 그때 한숨을 쉬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언른 몸을 버스 안으로 옮겼다. 버스는 덜컹거렸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를 위한 버스였다. 안식처와 비슷한 초록색 의자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운데 있는 의자에 폭삭 앉았고 바깥 풍경을 보았다. 화려하기만 보이는 간판들이 즐비했는데 이상하게 나를 밝혀주지는 않았다.


5정거장 뒤에 내려서 이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갈 차례였을 때였나보다. 나는 그 때의 오싹함을 잊을 수 없었다. 까치라도 있었으면 말동무하면서 구경하면서라도 발자국을 남기고 갔을테다. 그런데 그 날 뒤에 나를 쫓아오는 괴한이 나타났다. 나의 발자국에 맞춰서 장단을 치며 걸어왔다. 내가 느릿하게 걸으면 그 장단에 맞추었다. 뚜벅 운동화가 움직이면 구두의 날카로운 소리가 뚜벅 났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움이 엄습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다가 나는 결국 뜀박질을 시작했다.


성큼 성큼 그래도 다가오는 그 구둣소리.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같이 울리는 욕설.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도 위험에 처한 것이 다름없었다. 근처에 파출소라도 가야하는거 아닌가? 하면서 본능적으로 집을 피해서 다른 길로 무작정 뛰었다. 내가 아는 동네인지라 갈 수 있는 곳으로 피해야하는 것이 상책인지라 무작정 전광판이 24시간있는 고깃집이 있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골목길을 나가자마자 그 괴한은 사라졌다. 나를 납치하려고 했을까? 나는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골목길에 아직도 나를 기다리듯이 서 있는 것이었다.


이젠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난 분명히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할거만 같은 심장박동소리만 들렸다. 작은 홀쭉해진 배를 만지다가 손가락까지 내려 앉는 떨림.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를 부르는 우리 엄마의 목소리 환청이 들리면서 여태 했던 나쁜 짓들이 파라노마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아저씨는 나한테 다가오면서 말하기를


"00아 아빠야 왜 그래 같이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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