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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7. 2024

지금 생활이 좋다가도 싫다

수필 같은소설

인력꾼으로 일한 지 어언 3년째. 힘이 장사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부추김에 넘어가 결국에는 신라 장군처럼 돌아다니게 되었다. 한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똥물이 가득한 곳도 첨벙거리며 지나가지만 개의치 않고 늘 뛰고 걷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좋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돈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형제는 모두 6명이다. 모두가 인력꾼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치를 담가 파는 누이와 반찬을 만들며 무말랭이를 파는 둘째 누이도 있다. 또 아픈 형이 있어서 집에 누워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지낸다. 그의 한 번의 기침 소리가 집 안을 울릴 때마다 조용했던 분위기가 뒤흔들려서, 더 이상은 같이 지내기 어려워 지난주에 의원을 알아봐 잠시 입원해 있는 상태다. 내 밑으로는 아직 어려서 일할 수 없는 동생들이 있어 천덕꾸러기들이다. 시장에서 주워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주워 먹다가 설사를 한 적도 있었다.  엄마 옆에서 동생들이빨래를 널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살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며 집에서 노닥거린다.


오늘 나는 학당에서 배우는 음악과 미술 이야기를 서당개처럼 엿듣고 왔다. 그림은 보이지 않았고 음악은 들리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외침과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3시간이 지나도 결국 돈 벌러 나가지 않고 짚신을 만드는 척하면서 담벼락 옆에서 계속 수업을 들었다.


"그러니까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그리고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갔다는 말이군요." 오늘 배운 것을 기억하려고 모래 위에 글자를 적어본다. 시루떡에 적을 수 없으니 모래에 글귀를 하나씩 적었다 지우고, 다시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행복을 느꼈다 가슴 충만한 행복이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이젠 사람들이 몰릴 시간이다. 인력거를 끌고 다시 나서야 한다. 일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계속해서 사실주의 그림과 음악이 떠오른다. 피아노 소리처럼 흘러가는 음악을 듣고 싶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급히 걷다가 구덩이를 미처 보지 못해 진흙이 튀었다. 한 신사가 나를 보고 조심하라고 하며 머리를 한 대 쳤다. 그는 변덕이 심해 보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살피고는 “예, 나으리”라고 외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가고 싶어 하던 장소는 한양의 중심이었으니 받을 삯이 많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받은 돈은 달랑 3전이었다.

3전은 적다고 생각하여 “5전은 주셔야지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 신사는 자신이 입은 옷을 보라며 내가 옷을 더럽혔으니 값을 깎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엠병”이라 나지막이 말했지만, 신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인력거에서 내렸다. 내 손가락은 인력거를 끌다가 부러지고 쑤신다. 오늘도 변덕스럽게 살고 싶었지만 세상이 녹록지 않아 내 변덕을 삭이며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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