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치

지적하고 질문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라.

by Growood

8화.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치


화원은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가 처음에 가장 좋아했던

얼굴답게 여전히 일잘러의 전형이었다.

보고서는 깔끔했고, 메일은 업무 문서의 정석이었으며

회의에선 늘 핵심을 짚었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고, 임원들은 “일 잘하네”라고 말했다.


회사에선 이 단계까지는 모든 게 순조롭다.

일 잘하는 사람은 처음엔 언제나 환영받는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

화원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추가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위험을 부른다는 걸 수림은 훗날 알게 된다)

“이 일정이면
현장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나요?”

회의실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컵을 들었고, 누군가는 의자를 밀었다.

이미 끝난 회의에

질문이 하나 더 붙는 순간이었다.

“이 구조면
책임이 아래로만
내려오는 것 같아요.”

말투는 공손했고 표정도 차분했다.

다만 화원의 말은 늘 보고서가 아니라

사람 쪽을 향해 있었다.

실제 일하는 쪽, 현장에서 막히는 쪽.

그 방향이 회사에선 조금 위험했다.


상장은 아주 빠르게 개입했다.

“화원 씨 말도 이해는 가는데요.”

(어디서 상담이라도 받았는지 요즘 상장은 일단 긍정의 좋은 신호로 말을 시작한다)

“다만 지금은 조직 전체를
봐야 할 시점이라서요.”

(아, 나왔다. 조직 전체!!)

이 말이 나오면 대부분의 질문은

더 이어지지 않는다.

상장은 말을 정리했다.

“이건 개인 문제라기보단
관리 포인트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대표님 수긍수긍 폭풍 같은 수긍의 끄덕끄덕

그 순간

누가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지보다

누가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화원의 말은 회의록에 남지 않았다.

상장의 정리만 액션 아이템으로 기록됐다.


수림은 그 장면을 보며 분명하게 느꼈다.

아, 회사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보다

문제를 정리하는 사람을

끝까지 데리고 가는구나.

(사주에 상관격인지 회사랑 상극인 건지 그게 그건지.)


그날 이후 회의실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화원이 말하면 사람들은 흘긋흘긋 핸드폰 속 시간을 봤고

상장이 말하면 사람들은 메모를 했다.

아무도 대놓고 화원을 싫어하진 않았다.

(회사 생활에서 누군가를 대놓고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의 용기, 오호 용맹하여라)


다만 화원의 말은 점점
“지금 할 얘기는 아닌”
것이 됐다.

그 기준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정확했다.


수림은 그 변화를 너무 잘 알아봤다.

자기도 한때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정확함이 아니었다.

정의도 아니었고 용기도 아니었다.

조용함이었다.

안정감이었다.

질문하지 않는 태도였다.

끄집어내기보다는 덮고,

따지기보다는 수습하는 것.


수림은 처음으로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자기 방식이 틀린 게 아닐 수도 있고

화원의 질문이 유별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과 태도의 문제라는 것.

방향성과 태도는 자기 계발에서만 중요한 것인 아니었다.

회사는 회사 나름의

방향성과 태도가 있는 것이고

그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조용히 이루어지는 회사의 선택이 생각나니 겁이 났다.

수림의 예상과는 다르게

짧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던 결정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휴우 호흡 호흡 오션 웨이브 오션 웨이브~~~

회사가 화원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화원은 아직 그 룰을 정확히 보지 못했고

상장은 이미 그 안에서 아주 편안해 보였다.


수림은 그 둘 사이에서 조금씩 알게 됐다.

이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가

사람을 어떻게 밀어내는지.

그 깨달음은 생각보다 빨리

다음 장을 부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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