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에세이
우리 집은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덕분에 무더운 여름이면 우리는 자주 바닷가로 향하곤 했다. 그렇게 바다를 가까이 두고 자란 어린 시절은, 지금 돌아봐도 참으로 풍요롭고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즐겨 찾던 곳은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삼척 쏠비치다. 그 시절엔 ‘후진 바닷가’라 불리던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이었다. 읍내에서 바닷가까지는 어린 남매가 걷기엔 제법 멀고 험한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굴을 지나 바다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택하시곤 했다.
그 굴에 들어서면 처음엔 앞이 보이지 않아 무서움에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징징대기 일쑤였다. 다행히 굴은 아주 길지는 않아서, 조금만 들어서면 흐릿하게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남매는 그 어둠 속에서 귀신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울다가도 금세 깔깔 웃었다. 굴 안은 말소리가 울려서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두려움과 장난, 웃음이 뒤섞인 그 굴은 우리에게는 작은 비밀 놀이터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냄비며 쌀, 과일 등 먹을거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생과 내 손을 꼭 잡고 굴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셨다. 철로가 깔리지 않은 구간은 그나마 조금 평평했지만, 전체적으로 축축하고 미끄러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길이었다. 가끔 부모님의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우리는 축축한 굴 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걸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손바닥은 어느새 시커멓게 그을렸고, 그 손으로 무심코 얼굴을 문지르면 얼굴에 검은 자국으로 얼룩졌다. 굴을 빠져나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순간, “너 인디언 추장 같다!”라며 깔깔대며 웃던 우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파란 바다와 파도 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어느새 마음은 먼저 파란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바닷가에 도착하면 우리는 수영할 옷으로 갈아입고, 엄마의 “조심해라” 하시는 말씀도 듣는 둥 마는 둥, 손만 한번 휘저으며 곧장 준비 운동도 하지 않고 바닷물로 돌진했다. 발끝이 바닷물에 닿는 순간 “으아! 차다, 차가워!”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벌려 풍덩, 파도 속으로 온몸을 던졌다. 다행히 우리 남매는 물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기도 하고, 물속에 잠기기도 하면서도 금세 일어나 다시 파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나는 몸은 약했지만, 강단이 있었기에, 멀리 나가지 말라고 띄워 놓은 부표 공까지 튜브를 타고 나가서, 우쭐대며 만지고 놀다가 아저씨의 경고 사이렌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고, 엄마의 잔소리를 수시로 들어야 했다.
그 당시의 바다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다. 바닷속에는 조개가 넘쳐났다. 발가락 사이로 조개를 잡아 올리던 것은 어떤 것보다 신나고 재미있었다. 바위에는 따개비와 뿔소라, 섭조개가 가득했다. 바위틈을 기어 다니는 게를 잡는 것도 신나는 놀이였고, 파도타기를 하며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바다에서 놀았다.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지치고 추워서 바다에서 나오면 아버지는 뜨거운 모래 위에 우리를 눕혀 얼굴만 나오게 모래찜질을 해주셨고, 그 모습이 우스워서 서로 보며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엄마가 챙겨 오신 채소와 바위에서 딴 해물을 넣어 수제비와 죽을 끓여주셨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피고 정성껏 끓인 음식은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바닷가에서 먹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꿀맛이었다.
가끔은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풀고 섭조개와 부추를 넣어 끓인 얼큰하고 향긋한 엄마의 섭조개국 맛은 지금도 내 혀끝에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남매는 지금도 동해안에 가면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과 비슷한 음식점을 찾아가서 꼭 먹고 온다. 그것은 단지 음식뿐 아니라, 그리움이고, 행복했던 기억의 맛이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면 우리는 다시 차 타이어 고무 튜브를 들고 바다로 나가 실컷 놀다가, 저녁까지 든든히 먹고서야 아쉬운 발걸음으로 바다를 뒤로 한 채 굴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닷가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가족이 함께 나눈 사랑과 웃음, 수고와 배려가 오롯이 녹아든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바닷가는 나의 마음을 품어주고, 지금의 나를 형성해 준 소중한 토대였다. 바다 냄새, 모래의 감촉, 파도 소리, 엄마가 해 주셨던 맛 난 음식,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오감으로 스며든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삶 깊은 곳에 정서와 생각의 뿌리가 되었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책 『모든 삶은 흐른다』에도 이런 문장이 있다.
“바다는 인생이다.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소용돌이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내리지만 결국은 다시 잔잔하게 빛을 품고, 고요히 환하게 빛나는 것.”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몸으로 배웠던 깨달음이 떠올랐다.
파도가 솟구칠 땐 힘을 빼고, 몸을 들어 함께 올라타면 되었다. 내려올 땐 그 흐름에 조용히 나를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원리를 몰랐던 어린 시절,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파도를 거슬러 오르려다 보면 짠물이 눈과 코, 입속까지 밀려와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곤 했다. 그러나 흐름에 순응하고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 놀랍도록 가볍고, 신나고, 재미있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 바다는 내게 놀이를 넘어,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준 멘토였다. 삶은 언제나 평탄할 수 없다. 순탄한 길만 가면 좋겠지만, 굴곡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파란 바다 위로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인생도 흔들리고 요동치며 때로는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잔잔해지는 바다처럼 우리 삶에도 고요한 평온은 반드시 찾아온다. 기쁨과 슬픔,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결국 흐름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어릴 적 내 마음을 감싸주고 행복하게 했던 그 바다는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조용히 삶의 답을 전해 준다.
"힘들 땐 힘을 빼!, 흐름을 믿어. 너는 지금도 후반기 삶을 잘 가고 있어."
그래서 나는 나의 인생 멘토를 만나기 위해 파란 바다, 파도치는 바다를 자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