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나, 관계 회복 방법
“엄마, 엄마, 엄마~아~~”
옆집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외치는 그 소리는 내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띠게 하고, 마음속 깊이 잔잔한 메아리로 스며든다. 하교 후 문을 열며 부를 때도, 밤 12시 가까이 학원에서 돌아올 때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늘 따뜻하게 가슴에 남는다. 단순한 부름인데도 내 마음은 늘 멈칫한다. 그 소리가 정겹고 따뜻해서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한편으로는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차올라 복잡한 울림이 되기도 한다.
큰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계셨기에 아이가 부를 수 있는 어른들이 있었고, 외로움이 덜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분가한 후부터는 달라졌다. 감정형(F) 성향이 강했던 큰 딸아이는 그때 많이 허전했을 것이다.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퇴근 후에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에 지쳐 있었다. 친정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와 도와주실 때는 숨통이 조금 트였다. 아파트 옆 동에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아이들을 챙겨주었기에 40년 동안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아이 곁에 있어 주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하고 싶은 건 단 하나, 쉬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앞에는 설거지, 빨래, 저녁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의 숙제도 있었다. 피곤함에 지친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치며 숙제를 보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때의 짜증 섞인 말투가 내 마음에도 상처로 남았다. 잠든 아이 얼굴에 남아 있던 눈물 자국을 바라보며,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자책하며 혼자 눈물을 삼키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무덤덤하게 흘려보내야 할 때를 배웠고, 삶의 무게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씩 깨달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내게는 늘 아프게 다가왔다.
'어떤 모습으로 함께했나?' 되돌아보면, 지친 얼굴로 잔소리만 늘어놓던 순간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옆집 아이의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내게는 단순한 부름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놓쳤던 순간, 내가 지켜주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울림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를 찾던 아이들은 자라 성인이 되었고, 나 역시 할머니가 되었다. 이번 추석에는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까지 열한 명의 대식구가 모인다. 10일 가까이 함께하는 긴 연휴다.
나는 다짐한다. 이번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아이들이 마음껏 "엄마,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어야겠다. 명절이면 많은 부모가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한다. 어떤 음식을 차려야 할까, 멋진 여행을 계획해야 할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좋다. 그러나 내가 배운 것은 이렇다.
자녀들이 마음 편히 '엄마'라고 부르며 기대고 웃고 울 수 있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값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를 양념에 정성껏 재우고, 달콤한 무화과 잼을 끓이며, 꽃게를 손질하는 내 손길마다 설렘이 담겨 있다. 곧 도착할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엄마" “할머니”라고 불러줄 순간을 기다리니 마음이 설레고 따뜻해진다. 옆집 남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모란 결국 아이가 '엄마'라고 불러줄 때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존재이다. 그 부름 속에서 엄마도 힘을 얻는다.
이번 추석, 나 역시 그 소리를 마음껏 듣고,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내어주고 싶다. 추석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다시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엄마"라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바로 명절 속에 숨어 있다. 그러면서 나와 나 사이의 관계도 점점 회복해 간다.
“엄마라는 이름은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언어이며, 가장 늦게 잊는 언어이다.”
-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