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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의 온기, 그 속에 담긴 성장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감사와 배려

by 산소쌤

초등학생 둘, 유치원생 셋. 다섯 손주가 한자리에 모여 점심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각자 다니는 학교와 유치원은 달랐지만, 모두에게 점심시간은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저마다 달랐다.

"선생님이 음식 남기면 혼내서 싫어."

"우리 선생님도 밥이랑 반찬 남기면 안 된대."

"나는 점심시간이 제일 좋아! 맛있는 게 많이 나와."

"친구들이랑 빨리 먹고 놀 수 있어서 신나!"

저마다 다른 이유로 쏟아내는 아이들의 말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순간, 그들의 천진난만한 이야기가 내 마음속 오래된 기억을 소환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점심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70년대 겨울 교실은 왜 그리도 추웠던지. 누가 더 입김을 하얗게 피어오르게 하는지 내기를 하던 날도 있었다. 4교시가 되면 배는 허전해지고,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에 손끝이 곱아 펜을 쥐기조차 힘들었다.

그런 교실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쇠 난로였다.


난로 위에는 늘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고, 그 위로 양은 도시락들이 아슬아슬하게 층층이 쌓였다. 도시락을 골고루 데우려면 수업 중에도 슬금슬금 일어나 뒤집어야 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난로 담당'이었다.

난로 담당은 우리들에게는 인기 보직이었다.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주번이 돌아가며 맡았다. 선생님의 공식적인 허락하에 도시락을 뒤집으러 난로 앞에 갈 때면, 아이들은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밥이 눌어 타는 구수한 냄새, 김치의 시큼털털한 향, 달걀부침의 고소한 냄새가 뒤섞여 교실을 가득 채웠다. 난로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우린 슬쩍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음 지었다.

'4교시, 제발 빨리 끝나라!' 모두의 마음은 하나였다.


종이 울리면 너도나도 난로 앞으로 달려갔다.

"내 거 어딨어? 이거 내 거 맞지?"

서로 자기 도시락을 찾느라 북적였다.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얀 김이 솟구치고, 김칫국물에 밥이 붉게 물든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도시락2.png


아래 깔린 김치를 대충 젓가락으로 비벼 올리고, 도시락 양끝을 쥐고는 신나게 흔들어 비벼 먹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이었다. 덤으로 달걀노른자가 얹어져 있으면 그날은 횡재였다.

반찬이 단출해도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야, 내 달걀 줄까?"

"그럼 김치 좀 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웃음과 정이 오갔다. 창밖에는 찬 바람이 몰아쳤지만, 교실 안은 밥 냄새와 사람 냄새로 따뜻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와 배려'라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세월이 흘러, 요즘 학교 점심시간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양은 도시락 대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식판이 줄지어 놓이고, 코로나 이후 가림막이 생겼다. 급식실 문이 열리는 순간 복도는 금세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다.

"오늘 뭐 나와?" "야, 오늘 국 맛있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심시간의 활기를 더한다. 특히 일주일에 하루 있는 '특식의 날'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빠르고, 급식실 앞줄은 순식간에 길게 늘어선다.

교실에서는 4교시를 마무리할 즈음 이미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선생님도 그런 마음을 알기에 1~2분 일찍 수업을 마무리한다.

"선생님,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끝내요!"

투정 섞인 목소리 속에는 점심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가 묻어난다.


식탁에 앉은 아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창가로 나가 친구를 부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남들이 두 번을 받아먹을 때까지도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먹는 아이도 있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며 투덜거리는 아이, "나는 원래 김치 안 먹어"라며 반찬을 밀어두는 아이까지. 같은 밥상, 같은 음식인데도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학교 복도 벽면에는 늘 급식 메뉴판이 붙어 있다.

어떤 아이는 학기 초에 받은 달력 위에 메뉴를 적어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는 날엔 별표나 하트를 그려 넣는다. 그러고는 매일 아침 달력을 들여다본다.

"드디어 내일 스파게티랑 돈가스다!"

아침부터 들뜬 얼굴로 학교에 오는 아이도 있다. 점심 한 끼의 메뉴가 하루 기분을 좌우할 만큼, 급식은 이미 아이들 일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급식실은 하나의 작은 사회다.

먼저 먹으려는 경쟁이 있고,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타협이 있다. 좋아하는 반찬이 떨어질까 봐 다시 줄을 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의 식판을 힐끔 보며 "그거 안 먹으면 나 줄래?"라고 묻는 아이도 있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질서와 협동, 배려와 공존을 배운다.

어느 날 급식소위원회 회의에서였다. 한 부모가 손을 들고 말했다.

"짜장밥에는 당연히 짬뽕국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급식 시간마다 반찬 투정을 하고,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던 아이였다.

학교 급식은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가정에서 길러진 식습관과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울이다.

집에서 다양한 음식을 접하며 한 끼의 소중함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급식 시간도 즐겁게 받아들인다. 반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투덜대는 것이 익숙한 아이는 그 시간을 스트레스로 느낀다. 메뉴를 보고 아예 식당에 가지 않는 아이도 있다.

점심을 일찍 먹고 가끔 급식실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가림막 너머로 친구와 웃으며 밥을 먹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혼자 식판을 바라보는 아이도 있다. 다 먹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아이, "빨리 먹어"라며 친구에게 재촉하는 아이도 눈에 띈다.

급식실은 단순히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이 관계를 배우고, 마음을 키워가는 또 하나의 교실이다.

결국, 아이들이 어떤 식습관을 가지게 되는지는 부모의 한마디 말과 식탁에서 보여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양은 도시락의 시대이든, 스테인리스 식판의 시대이든 한 끼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공동체의 온기, 감사의 마음,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고,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손주 다섯을 바라보며 나는 새삼 그 사실을 느낀다.

급식실에서 친구와 반찬을 나누며 웃는 아이,

싫어하는 반찬도 한 번쯤 맛보려 애쓰는 아이,

“오늘 급식 맛있었어요!” 하며 환하게 웃는 아이.

그 순수한 모습 속에서 나는 작은 사회의 단면을 본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점심을 거르는 아이, 매일 불평만 늘어놓는 아이를 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울 기회가 아닐까?

한 끼의 식사가 하루를 바꾸고, 그 식탁에서 나누는 마음이 소박한 행복의 씨앗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손주들에게 자주 묻는다.

“오늘 점심은 어땠니?”

그 질문에는 단순히 메뉴를 묻는 마음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길 바라는 나의 작은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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