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바쁘게 지낸 나를 위해 억지로 밀어 넣어 보는 에너지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가운데서도 한가한 겨를을 얻어 즐기는(망중투한) 시간은 만들어서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집에 있으면 핸드폰,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면서 눈 질환으로 눈물 찍어 가며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아 무조건 밖으로 초록이가 아니면 하얀 산에 남아있는 눈이라도 보러 나가 본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마음이 복잡하거나,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다녔던 두 곳! 나와 남편의 아지트, 양평 서종면으로 나갔다. 엔로제와 내추럴가든 529는 송파 집에서 출발하면 4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따뜻한 날은 흐르는 냇가에서 물 멍, 앞 산 초록 나뭇잎을 보며 멍 때릴 수 있으며, 추운 겨울날은 장작불을 보며 불 멍, 내린 눈을 보며 눈 멍, 계곡에 얼어있는 얼음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얼음 멍을 할 수 있어 좋다. 진한 커피를 놓고 앉아서 멍 때리기를 한참 하고 있으면 복잡한 마음과 생각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마법 같은 곳이다.
두 곳 중 더 좋아하고 초입에 있는 엔로제부터 가본다. 장작을 넣어가며 멍 때 리던 우리의 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금 떨어진 내추럴가든에 가니 우리의 자리가 있다. 계곡 앞에 피운 장작불, 계곡 얼음 위에 있던 쌓인 눈, 썰매를 탈 수 있도록 치워 놓은 얼음 판 등 여기저기 돌아보며 어디에 앉아도 다 한참을 앉아 멍 때리기 좋은 곳이다.
망중투환 멍 때리기는 힐링이다. 글을 쓰기 위해 독서할 시간이 필요하고, 요리를 하려면 칼을 갈 시간이 필요하고, 멜로디를 만들려면 음과 음 사이에 꼭 쉼표를 찍어 숨 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음과 음 사이에 쉼표가 없으면 소음이 되고 허덕 되며 아름다운 멜로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쉼이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경고를 보낸다.
쉼이 필요해! 문제는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번아웃 될 때까지 버티지 말고 나에게 신호를 보낼 때 에너지를 충전하여야 그 동력으로 다음 또 그다음 날에 사용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말이다. '바쁜 중에도 한가함을 훔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휴식은 시간이 날 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무조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서 취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해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 쉼의 답을 찾아낸다. 글이 쓰고 싶고 책의 내용이 달리 해석되며 너그러움과 포만감이 생긴다.
쉼은 그런 것이다. 오늘은 얼음을 지치며 쿠당탕 넘어져도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썰매를 끌어주는 할머니와 손자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멍 때리는 쉼에 행복감까지 덤으로 얹어준다. 장작 타는 냄새가 오늘은 더 진하다. 어릴 때 할머니가 정지(부엌의 강원도 사투리)에서 아궁이에 불 땔 때 들려오던 탁탁 타다닥 소리와 함께 옛 추억이 겹쳐지니 더 구수하고 진한 그리움이 느껴지며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돌아오는 길이 가볍다. 지난주에 정신없이 몰아치며 지냈던 몸의 피곤함과 생각을 그곳에 털고 왔나 보다. 한결 가볍고 좋다.
삶의 + - 조화, 망중투한(忙中偸閑) 시간은 그래서 좋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잠시 하던 일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보면 삶의 조화로운 균형이 어떻게 깨져 있는지 분명하게 보인다."라고 했다.
은퇴 전에 마인드 컨트롤 하며 나를 챙겨주었던 나만의 이 시간이 은퇴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은퇴 후의 생활이 엄청 여유가 있고 느슨한 줄만 알았는데 3년이 지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몸은 조금 더 민감해졌다. 쉼과 일의 균형을 잡는 것은 본인이 제일 먼저 안다. 그 예민함을 존중하고 무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40년 동안 직장 생활의 루틴이 바뀌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 멍 때리기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망중투한 거리는 뭐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