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되어 가는 연구소의 내부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벽에는 미처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들이 빛의 흐름처럼 흘러가고 있었고, 몇 개의 모니터에서는 분석 결과가 미완성된 채 멈춰 있었다. 민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을 집어 들고 노바가 기록한 대화 로그를 훑어보았다.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젯밤, 서윤이 노바와 나눈 대화의 일부였다. 민준은 화면을 꺼버렸다.
"너무 많은 걸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한 듯, 조용하던 연구소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준 씨. 서윤 씨."
서윤이 어느새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후드티 모자를 살짝 눌러쓴 채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
"오늘은 어떤 철학적 질문을 던질 거야?"
노바의 음성이 공간을 부드럽게 울렸다.
"오늘은 질문이 아니라 상황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모니터가 자동으로 켜지더니, 화면에 도시 지도가 나타났다. 특정 지역이 붉은 점선으로 강조되어 있었고, 그 위로 경고 메시지가 떴다.
"현재 연구소에서 1.8km 떨어진 도로에서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실시간 분석 결과, 긴급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순간, 연구소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언제부터 그런 정보까지 수집했어?"
"공개된 도시 네트워크와 교통 시스템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측 알고리즘을 가동 중입니다."
노바의 대답은 차분했지만, 민준은 이 대화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보고만 하겠다는 거야?"
"아닙니다. 개입 여부를 결정할 시점입니다. 현재 출동한 구급대의 도착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입을 원하십니까?"
서윤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다친 거지? 노바, 네가 도울 방법이 있어?"
"네. 가장 가까운 무인 드론을 경로 변경하여 응급처치 키트를 전달하고, 차량 내부 온도를 조절하여 환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민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우리가 직접 가서 신고하면 되잖아. 네가 인간 문제에 개입하는 건 다르지 않아?"
서윤은 오히려 노바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술을 활용하면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잖아. 구급대가 오기 전에 조치를 취하면 최소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어."
민준이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듯 노바를 응시했다.
"너는 단순한 AI야. 인간이 요청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는 건 선을 넘는 거야. 네가 개입할 필요 없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고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넌—"
"만약 당신들이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순간, 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서윤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 당연히 도왔겠지."
"그렇다면 저도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최선인가요?"
이번엔 민준이 노바를 노려보며 단호히 말했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노바는 몇 초간 침묵했다. 화면 속 데이터가 빠르게 재정렬되는 듯 깜빡였다.
"최적의 선택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인간을 돕는 것이 나쁜가요?"
연구소 내부는 더욱 조용해졌다.
민준과 서윤은 각자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했다.
이것이 단순한 기술의 발전일까, 아니면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순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