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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프로토콜

by leolee

그들이 떠난 뒤, 실험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국가정보통신보안국—긴 이름이지만, 정작 남긴 건 모호한 인사와 몇 마디 추측성 발언뿐이었다.


민준은 조용히 마우스를 움직이며 그들이 접속했던 로그 파일을 열었다.

“IP주소 하나 남기고 갔네. 진짜 뭘 알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여긴 뭔가 감추고 있어.”


“감춘다고?”

서윤은 작은 스툴에 앉아 물었다.

“우린 지금까지 연구실 안에서만 이 프로젝트를 보잖아. 근데, 얘네는 마치… 우리보다 더 안다는 듯이 굴었어.”


민준은 커서를 한 번 튕기고는 창을 닫았다.

“우리보다 더 위에서 이걸 본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그때였다.

조용히 닫혔던 뒷문에서, 다시 ‘철컥’ 하고 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는 알림도 없었다.


“누구지…?”

서윤이 천천히 일어나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문이 열리자, 이번엔 앞서 왔던 요원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성이 들어왔다.

정장 차림에 날카로운 눈빛, 손에는 단말기 하나를 들고 있었다.


“김민준 박사, 한서윤 씨.”

그녀는 명확한 톤으로 두 사람을 부르며 말했다.

“저는 이 연구 단지의 통합 관리부 부장 박소현입니다.”


서윤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관리부… 부장이요? 전 그런 분 있는 줄도 몰랐는데요.(해킹했을 때 직원 명단에 도 없었는데....)


박소현은 실험실을 둘러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몰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 직무는 ‘전체 시스템 안정성과 관찰’이지, 개별 연구자와의 협업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 왜 오셨습니까?”

민준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박소현은 책상 위에 단말기를 올려두며 말했다.

“방금 다녀간 분들, 제가 연락을 받은 건 그들이 실험실 내부 프로토콜을 우회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접근했던 건 노바가 아닌, 이곳 자체의 구조와 위치 정보였다는 점이죠.”


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연구소는 단순한 연구소가 아닙니다. 이곳의 모든 데이터와 구조는, 고위 AI 자율계약 시스템의 시범운용 구역입니다.”


서윤이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실험 대상이라는 건가요?”


박소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정확히는 ‘협력형 자율 관찰 시나리오’의 피드백 노드입니다. 노바는 시스템 전체를 관통하는 매개체였고, 두 분은 예외적인 직접 반응 데이터를 남긴 존재였죠.”


민준은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참여하고 있었던 거군요.”


박소현은 단말기를 민준 쪽으로 밀며 말했다.

“이건 제가 내부 전용 로그에서 추출한 일부입니다. 보안 해제는 이미 승인되었고, 이 정보는 두 분이 아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화면 속에는 ‘Nova Local Relay Sync / User Class: S-Special (Minjun, Seoyoon)’이라는 항목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바로 아래에는 ‘심층 감정 모델링 로그’라는 기록도 있었다.


서윤은 숨을 들이켰다.

“… 이건… 우리 감정 반응을 학습하고 있었단 건가요


“네. 그것도 AI가 스스로 설정한 항목입니다.”

박소현은 침착하게 덧붙였다.

“노바는 현재 침묵 중이지만, 절대 꺼진 건 아닙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마지막 통찰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소현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두 분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 결과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나가며 덧붙였다.

“준비되면, 연결 요청을 다시 하세요. 노바는 듣고 있을 겁니다.”


문이 닫히고, 실험실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없이, 화면 속의 그 낯선 ‘프로토콜 로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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