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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Oct 21. 2024

숨을 못 쉬는 남자친구

아무런 인사도 못했는데 보내주자는 교수님

다행히도 나의 휴직은 정말 빠르게 진행됐다.

엄마와 이야기 한 다음날

회사에 가서 얘기했고

그날 바로 처리됐다.


미리 팀장님과 남자친구의 상태를 공유했던 덕분이었고

팀장님도 회사보다는 개인의 일을 신경 써주시는 분이라서 가능했다.


오후 2시까지 중요한 보고를 마치고

3시에 팀장님과 면담을 하고 그럼 내일부터 바로 휴가를 쓰고 휴직을 신청하라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그날도 일찍 들어가라고 하셔서 5시에 회사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휴직 이렇게 금방 할 수 있던 건데

왜 이렇게 망설였었나

내 자신을 자책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만두와 찐빵을 사서 병원에 갔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던 오빠가 만두도 찐빵도 잘 먹었다.


뭘 먹었는지 기록하는 기록판에

만두, 찐빵을 썼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혼을 냈다.


금식이라고


아니 처음 듣는데요?;;;


갑자기 금식...

지금은 인지저하가 있어서 음식을 먹으면 흡인 위험이 있다고 했다.


진짜 처음 듣는 소리였다.

금식이면 금식 팻말이 보통 붙는다.


만두, 찐빵을 먹고 나서 양치를 시키고 싶었는데

그때부터는 또 인지가 떨어져서

칫솔을 계속 물었다.


그래서 결국 양치를 시킬 수 없이 잠에 들었다.


다음날도 대화는 불가능한 인지 상태였지만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점점 의식이 떨어지더니 또 기절한 듯했다.


물을 빼야 할 것 같은데 교수님은 안 오셨고

계속 언제 오시는지 물었다.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고

밤 10시쯤이 되어서도 안 오시자 한번 더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었다며

지금 교수님이 진료실에 계신다고 했다.


근데 물 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면 오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우리가 물 빼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

어떻게 저렇게 전달이 될 수 있는지 진짜 당황스럽다.


의미가 없다는 건

암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물이 차면 물을 빼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 결정도 의료인의 권한인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물을 뺐고 난 정말 병원이 원망스러운 하루를 마쳤다.


물을 빼고 나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나서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석션을 가져와 가래를 빼주셨다.


왜 늘 내가 먼저 요청해야 하는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겨우 잠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오빠가 끙끙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왜 어디 불편해?

끙끙끙끙끙

지금 생각해보면 숨이 안 쉬어질 때 내는 소리를 낸 것 같다.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오빠에게 뭐가 불편하냐고 묻고는 별 대답이 없자

다시 돌아갔다.


소리가 계속되어 다시 호출했고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 이상해서 산소포화도를 재달라고 했다.

80대가 나왔다.

산소포화도는 95~100이 정상이다.

80대는 정말 위험한 수준이다.


간호사는 놀래서 얇은 산소줄을 오빠에게 곧바로 채웠고

채운 산소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지다 70대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나는 너무 흥분했고

어쩔 줄 몰랐다.


오빠는 그제야

급히 처치실로 옮겨가 강한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산소포화도가 90 정도로 회복이 되었으나 의식은 없었다.

폐렴 때문에 낀 가래가 호흡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때 간호사가

교수님의 전화라며 바꾸어주었고

교수님은 이제 오빠를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며

월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션트 수술도 의미가 없으며

지금 상황에서 폐렴은 회복되기 어렵다고 했다.

어제 물 뺄 때 가래가 끓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게 암의 순서라고 했다.

어제 가래소리를 들었으면 왜 석션을 지시하지 않고 가신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하면 못 깨어날 수도 있다며

굳이 환자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엉엉 울며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지금은 진짜 안된다며 울었다.


계속 뭐든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 교수님께

화도 났지만

화를 내면 정말 수술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꾹 참았고 예정된 수술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교수님은 환자 중에 션트를 수술한 환자가 없다고 했다.

사례도 없으면서 수술은 의미 없다고 위험하다고 얘기한 교수님을

지금도 어떤 방향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오빠와 나는

오빠가 이렇게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서로와 이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암묵적 배려였다.


그런데 막상 오빠가 이렇게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대화를 한 번도 나누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됐고

인사도 없이 보내는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빠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오빠가 지금 의식이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오빠였으면 수술이 위험하더라도 무조건 수술을 했을 것 같다.

10년 동안 본 오빠를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이 수술이야말로 밑져야 본전인 수술이었다.


오빠를 살리고 싶은 나의 무리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빠였으면 어땠을까?

오빠의 대리인 자격으로 나는 수술을 강력히 원했다.


형님과 엄마를 즉시 병원에 오게 했고

상담실에 교수님, 나, 엄마, 형님 넷이 앉았다.


수술을 말리는 교수님의 말은 아예 들리지 않았다.

오직 수술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난 오빠가 수술을 하다가 잘못되더라도

어차피 이렇게 보내주는 것보다는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그렇게 오빠를 보내줬으면

수술했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후회가 가득할 것 같았다.


수술을 하다가 잘못되면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됐다고 생각하고 후회할 건 없었기 때문에 수술을 결정했다.


그러던 중

구세주처럼 당직이었던 신경외과 교수님이 등장했다.


오마야로 1~3개의 주사기를 가끔 뺐던 혈액종양내과 주치의 교수님과는 달리

7개 주사기로 물을 빼주었고

한 번에 많이 빼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바로 해결책을 내주셨다.


그리고 물을 빼서 괜찮아진다면

물을 빼는 게 맞는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정말 너무나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었다.


링거를 시간에 맞춰 정확한 양이 들어가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 장치를 거꾸로 달아 오빠의 오마야에서 빈백으로 일정 시간에 일정양이 빠지도록

조치를 취해주셨다.


우리는 월요일 수술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만 버티면 되는 상황이었고

어떤 조치를 해주시던 너무 감사했다.


그 조치가 위험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100배 나았다.


이 조치는 결국 물을 빼는 것이기 때문에

물을 뺐는데도 오빠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션트를 해도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오면 션트를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위험한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위험해도 해보자는 말을 간절히 기다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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