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맥박으로 꼬박 이틀을 버틴 남자친구
사실 신경외과 교수님이 등장하기 전,
몇 주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물 빼는 게 의미 없다고 선언한 주치의 교수님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들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고
내가 물을 빼기 위해 교수님의 회진 시간을 기다릴 때,
본인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병실까지 다 들렸다.
"물을 빼는 게 의미 없다는데 왜 저렇게 집착하는 거야"
등등
마음 같아서는 나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병원에서는 굳이 소란을 피우는 게
오빠한테 손해라는 마음이 들어서
몇 주를 그런 소리를 들으며 버텼다.
하지만 신경외과 교수님은
물을 빼서 증상이 나아지면 물을 빼는 게 맞는 거라며
물을 빼주시니 정말 너무 감사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임시 조치를 받고
오빠는 눈을 겨우 떴지만
며칠간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동글동글한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봤다.
그리고 본인도 숨이 안 쉬어졌던 게
무의식적으로 무서웠었는지
밤새 자지 않고 뜬눈으로 버텼다.
산소포화도는 잡혔는데 맥박은 계속 빨랐다.
밤새 145~165를 왔다 갔다 하며
일반인이 달리기 하는 수준의 맥박으로
오빠는 버티고 또 버텼다.
숨 넘어가듯 헉헉대며 버티던 오빠는
한마디를 뱉었다.
"이거 안되는 거 아이가"
지켜보던 나도, 형님도 눈물이 핑돌아
오열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다짐인지
오빠를 응원하는 건지
묵묵히 한마디가 나왔다.
"왜 안돼, 될 거야. 우리 월요일에 수술하니까 하루만 더 버티면 돼"
그렇게 기적적으로
일요일 아침을 맞은 오빠는
조금이나마 안정된 상태로 2인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내가 어제 너무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며
달콤하고 따뜻한 믹스커피를 한잔 타주셨는데
그 커피 한잔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병실로 옮기고
물도 꾸준히 빠지니
의식이 점점 괜찮아져서
말도 다시 하기 시작했고
웃기도 하고
엄지척을 해주고
하트도 계속 날려주었다.
정말 행복했다.
남들이 봤을 땐 행복한 상황이 아니겠지만
그 순간 나는 오빠에게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그 위급한 순간 안에서도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토요일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던 오빠는 월요일도 무사히 맞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니 그저 감사했고 너무 감격스러웠다.
수술을 해주시는 신경외과 교수님은
응급처치를 해주신 구세주 교수님과는 다른 분이었지만
병실에 오시자마자
주치의 교수님께 들은 것보다는 상황이 많이 괜찮다며
션트 큰 수술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고 말씀 주셨다.
주치의 교수님께서
신경외과 교수님이 오빠 상태를 보고
수술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해서
월요일 아침에도 내심 불안했었는데
신경외과 교수님의 몇 마디가
너무 든든했고 수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솔직한 말씀을 주셨다.
"2주 전에 주치의 교수님께 말씀드렸을 때, 수술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때보다 뇌수조가 많이 커졌어요"
주치의 교수님의 환자 중 션트를 한 환자가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빠르게 수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대한 인정이나 아쉬운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면
지금 나의 마음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주치의 교수님은
협진을 해서 응급조치를 받고 수술을 한 것도 교수님 덕이라고 말해서
숨이 턱 막혔고 당혹스러웠다.
아직까지도 계속 찜찜하고 답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션트 수술을 못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그때 상황을 잊고
늦었지만 수술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보호자의 입장으로 환자가 무조건 잘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마주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주셨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힘든 마음에 충분한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간절하게 바랬던
수술을 할 수 있음에 정말 다행이었다.
그저 이제는
수술 끝나면 중환자실이 아닌 병실로 갈 수 있길 기도했다.
내 걱정을 덜어주듯
오빠는 정말 환하게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