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미래가 없어
오빠가 먼저 할 말이 있다고 한건 꽤 오랜만이다.
그 자체로 기대되어 귀를 기울였다.
오빠 : 나 며칠 생각해 봤는데 재활병원에 입원하고 싶어.
나 : 응? 갑자기?
오빠 : 응. 집에서 잠깐 하는 건 빨리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아.
나 : 그래도 그때 병원 가서 힘들어했잖아.
오빠 : 거기 말고 다른 병원 알아봐 줄 수 있어?
나 : 당연히 알아봐 줄 수 있지. 근데 진짜 괜찮겠어? 집이 편하잖아.
오빠 : 편하긴 제일 편하지. 근데 미래가 없어.
나 :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난 사실 예전부터 오빠 재활하고 싶었어.
근데 오빠가 저번에 너무 힘들어해서 내 욕심인 것 같아서 내려놨었어.
오빠가 이렇게 먼저 얘기해주니 고맙다.
그래도 오빠 이번엔 더 신중하게 고민했으면 좋겠어.
집에 오시는 분들도 많고 다 말씀드려야 하니까 금방 퇴원하면 좀 그렇잖아.
오빠 : 최선을 다해서 버텨볼게. 힘들어도 해야지.
나 : 알겠어. 내일 바로 병원 알아볼게.
거의 1시간에 걸친 대화를 했다.
이 대화의 결론은
재활병원에 입원을 하고 싶다.
지금은 편하지만 미래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내 남자친구 다운 말이었다.
대화를 하고 돌이켜보니
재활을 힘들어만 하던 오빠가
어느 날부터인가 재활선생님만 기다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안 오시면 왜 안 오시냐고 물었고
오시는 시간만 물었던 것 같다.
오빠와 대화를 끝내고
오빠가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조금 됐다.
한 달 전, 동네 재활병원에 갔다가
하루 만에 퇴원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땐 연이은 입원과 치료 이후에
바로 병원을 전원한 거라서 오빠가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섬망이 너무 심해 모두가 지쳐 결국 집에 왔었다.
그 이후에 재활은 내 욕심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집에서 그저 편하게 지낼 방법을 고민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오빠가 먼저 그런 말을 해줘서 놀라웠고 또 고마웠다.
오빠의 투병을 함께하면서 결심한 건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마음을 먹었었기 때문에
치료에 내 의견은 거의 없었다.
항암을 하기 싫은 것도 오케이했고
오빠가 하고 싶은 건 다해주고 있었는데
재활병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니
너무 고마운 도전이었다.
물론 이 도전이
일주일도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체력이 너무 많이 빠진 상태니까
일반식은 하지 못하고
죽도 몇 입 겨우 먹는 오빠니까,
그래도 이 도전을 하려는 오빠를 응원하고 너무 싶어서
대화를 한 다음날, 병원에 가서 입원 결정을 했다.
오빠는 병원 결정이 너무 빨라 놀랐었지만
사실 오빠한테는 비밀로 했었는데
재활병원 시스템 상
위험한 환자는 많이 안받으려고들 해서
경기도권 괜찮은 병원 중에서
보호자가 함께 입원이 가능한 병원 중에서
오빠를 받아주겠다는 재활병원은 딱 두 곳이었다.
한 곳은 하루 만에 퇴원했고 오빠가 가기 싫어하니
남은 한 곳에 바로 방문해서 입원 결정을 했다.
실제로 보니 지어진지 1년 정도 되어 깨끗해서 좋았다.
집이랑도 차로 15분 거리로 많이 멀지 않았다.
나도 오빠가 잘 버텨주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휠체어에 앉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산책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콧바람이라도 쐬면 좋을텐데 매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빠에게 너무 무리라는 걸 알기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빠도 이렇게 지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먼저 말을 못 꺼낸 게 미안하기도 했다.
처음엔 눈만 떠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눈을 뜬 다음엔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집에 가서 잘 지낼 수 있길 바랐는데
이제 보니 기적처럼 다 이루어진 것 같다.
지금은 걷는 것까진 안 바래도
휠체어에 편하게 타고
휠체어에 앉아서 산책을 즐기고
카페를 가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바라본다.
재활병원의 낯선 환경과
바쁜 일정들이
오빠를 또 힘들게 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 불안정한 상태기 때문에
집에서 안정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이 상황을 깬다는 것이
매우 큰 도전이지만
오빠의 마음이 정확히 뭔지 알기 때문에
오빠의 도전을 응원하고 늘 함께 할 거다.
이렇게 안정적이지만 의미 없이 지내는 삶보단
하루를 살아도 삶처럼 살고 싶은 그 마음
너무 잘 아니까 힘차게 응원해 본다.
우리 또 잘해보자 오빠
파이팅!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