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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Dec 11. 2024

호스피스로 전원하는 날

재활병원을 떠나며

이번주 월요일 새벽 7시 30분,

대기했던 호스피스병원에서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오빠랑 나는 구급차를 타고

엄마는 거의 재활병원 짐을 챙겨 자가용으로 뒤따라 왔다.


요즘 내 차보다 더 많이 타던 구급차인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추석 끝나자 마자 입원해서 눈이 펑펑오는 한겨울까지

거의 두달 반의 시간을 보낸 재활병원,

오빠가 원했던 목표를 못이루고 전원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도 했다.

집에 있어도, 다른병원에 있어도 안했을 연명치료지만 막상 서명하니 기분이 먹먹했다.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데

오빠가 당장이라도 나를 떠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의식에 오빠가 떠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다른 사람의 입으로 계속 듣는건 좀 다르고 힘든 것 같다.

인정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그만 듣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이후, 이곳은 기독교병원이라 목사님이랑도 얘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죽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천국가서 다시 만나는 거라고 하셨다.

사실 현생은 너무 힘든 삶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삶이 힘들다는 말에 왜이리 공감이 되고 슬펐는지 모르겠다.

살아 내는 것은 정말 힘이 든다.


상담 후 눈물을 쏟아내고

오빠가 있는 병실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오빠는 병원에 오고 나서 환경이 변했는데도 잠은 잘 자고 있다.

생각했던대로 쉬기에는 재활병원보다 좋은 환경이다.


온돌바닥으로 되어 있어 나도 오랜만에

보호자 간이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뒹굴거리며 잤다.


호스피스라는 단어 자체가

싫었을 때가 있었는데

잘 쉬는 오빠를 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곳이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이별은 준비한다고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준비하지 않는다고 늦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호스피스에 왔다고 해서

좋아질 오빠가 안좋아질리도 없고

좋아질거면 이곳에서도 좋아질거다.


그렇게 믿고 하루하루 잘 지내보고 싶다.


오빠의 상황이 많이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입모양을 읽으려 노력하고

손으로 오케이, 하트, 최고를 해주며 의사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내 입모양 잘 알아봐줘서 고마워

역시 우리 10년짬 어디 안간다 최고야


그래도 지금 긴대화는 어려우니

오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여기에 적어볼게


나 몰래 내 블로그와 브런치를 보던 오빠,

기적처럼 컨디션 좋아져서 내 마음을 읽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빠!

오빠가 재활병원에서 원했던 목표는 못이루고 나가지만

그래도 우리 좋은 시간들도 많았지?

가장 먼저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


내가 오빠 체력이었으면

재활은 꿈도 못꿨을거야


강한 오빠라서

또 그 엄청난걸 해냈어


처음에 입원하자고 했을 때

3일만에 퇴원할까봐 걱정했는데

길어도 2주라고 생각했었는데

긴 시간 노력해줘서 정말 고맙고 애썼어


병원에 있으면서 행복한 시간들도 많았어

오빠가 점점 좋아졌던 소중한 시간들,

식사시간마다 나란히 앉아 보던 나는 솔로


휠체어 끌고 나가 외식에 성공했을 때,

내 기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오빠는 모를거야


휠체어를 밀고 식당까지 가는데도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어

파스타 집에서 오빠가 포크로 파스타 돌돌말아 입에 넣어먹을 때도 감격

감자탕 집에서 내 컵에 맥주 따라줄 때는 또 그 상황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오빠 덕에 행복한 감정 많이 느꼈어


사실 재수술하기 전에

수술하고 컨디션이 안좋아지는 것도 우리의 고민이었고

그래도 꼭 해야하는 수술이어서 한거였잖아


만약 안좋아지더라도 우리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후회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조금은 후회가 돼...


눈에 띄게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수술하고 힘들어하는 오빠를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파


미래를 위해 한 수술인데

현재를 희생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속상해


다시 회복해서 현재와 맞바꾼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미래만 보고 달리는 성향을 가진 우리는

그동안도 미래를 보며 고생하며 살았고

수술을 결정할 때도 더 좋은 미래를 꿈꾸며 했네

참 바보들이야 그치?

그래도 난 오빠가

현재보다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좋았어

그래서 함께 미래를 보며 나아갈 수 있었으니깐


그래서 지금도 하루 하루

우리의 선택이 잘한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오빠에게 또 한번 기적이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해


오빠

그리고 나 하나 당당하게 꼭 말해주고 싶은건

오빠를 포기해서 재활병원에서 퇴원하고

호스피스병원으로 온게 아니야


재활병원은 재활을 하러 들어간건데

오빠 컨디션이 재활을 하지 못하니

잠만 자기에는 너무 열악한 상황이라

오빠가 편하게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는 곳을 고민했어


집이랑 호스피스 병원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이 김에 공기 좋은 곳에 가보자 하고

집이랑 멀리 떨어진 이 곳까지 온거야

오빠 아팠을 때 시골에서 살고 싶어 했잖아


언제라도 오빠가 집 가고 싶다고 하면

난 집으로 바로 갈거야


그래도 오빠가 여기 와서 섬망도 없고

잠도 잘 자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게 지내주어서

내 눈물도 점점 줄어가


지금은 그냥 오빠가 내 곁에 없는건 생각 안할래

그냥 늘 그랬듯이 오빠랑 꼭 붙어서 하루하루 또 잘 지내볼래


오빠

날 너무 속상하게 해서 가끔 미울 때도 있지만

밉다는 마음이 금방 스쳐지나갈정도로

너무 사랑하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늘 옆에 내가 있을테니까

오빤 걱정하지말고 푹 쉬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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