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성수는 「위스키 온더락」 노래에서, 남자 중년을 이렇게 노래했다.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네’. 맞다. 뭔가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게 있고, 늘어나는 게 있다. 줄어드는 건 열정과 호기심이고, 늘어나는 건 뱃살과 눈물이다.
난 중년이 되면서 갈수록 눈에 띄게 눈물이 많아졌다. 무슨 영화나 드라마만 보면 남들은 별 장면도 아니라는 데, 나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면서 코를 훌쩍거리고 있다. 큰 딸이 거실을 지나가면서 “아빠 울어?”라고 물으면서 웃는다. 나는 안 운 척도 못하고, 살짝 쪽팔린다.
최근 나를 울린 작품들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나의 해방일지’,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아저씨’, 영화 ‘아빠의 바이올린’, ‘Just Mercy’, ‘피아니스트’, 임지호 셰프를 그린 다큐 영화 ‘밥정’ 들이다.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 그리고 나의 아저씨 드라마를 연달아 보면서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은희와 한수가 목포 여행서 한수가 돈 얘기를 차마 못 꺼낼 때, 호식과 인권이가 서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장면, 인권이와 아들이 부등켜 안고 울 때, 영옥이 장애인 언니 영희가 떠나고 언니의 그림을 보고 흐느낄 때, 춘희 삼촌과 손녀 은기가 달 백 개를 보면서 두 손 모아 소원빌 때 등등 수도 없이 많다. 마지막 앤딩 장면 동석이가 이미 시신이 되어버린 엄마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의 아저씨’에선, 두 주인공(따뜻한 아저씨 박동훈과 맹랑한 지안이)의 대화속에서 촉촉하게 젖은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안이가 마지막 남은 혈연인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장면에선 역시나 나도 대놓고 울었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시작되는 인간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마음이 내 가슴에 들어와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들의 스토리 전개나 주인공들의 엄청난 열연으로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울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헌데 나는 유독 최근에 눈물이 많다. 주로 진심이 느껴지는 장면에서 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에 빙의되어 마치 내가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보 같이....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서 실생활에서 운 경우도 있다. 난 지금도 내가 방역수칙 위반으로 대기발령을 받은 날 아침에 김○○ 당시 행정국장님(현 서울시 행정1부시장, 평소 사석에선 형님이라 부름)께서 “내가 널 잘 못 키웠다”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신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 말에 나도 울었었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 분비가 증가 하고, 남성은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호르몬 분비가 증가한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단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의 등짝 스메싱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간다. 짝하고 찰진 소리가 난다. 찌릿하게 아프다.
나는 요즘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나의 일상 행동지침과 관련하여 아내 앞으로 각서를 써 주었고, 아내님은 그것을 코팅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다. 딸들이 보고 웃는다. 드디어 올 게 오고야 말았다고, 사필 귀정 이라고...
이러다가 내가 에스트로겐 분비가 더 활성화되면 애처가, 공처가를 넘어 놀랄 경의 경처가(驚妻家)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경처가 : 아내의 말 한마디에도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남편을 이르는 말
쪽팔리지 않을려면 이젠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