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는 이장집 딸이자 내 절친이다. 성격도 털털하고 달리기와 넓이뛰기를 잘하는 예쁜 친구였다. 우린 어릴 때부터 싸우지도 않았고 단둘뿐인 여자 동기라 서로를 챙겼다.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옥이네 집은 약간 개조를 해서 전방(구멍가게)을 했는데 벽에 나무 선반을 3층으로 쌓아 올린 게 전부였다.
이장 아저씨가 바람을 피우고 두 집 살림을 해서 그렇지 그 옛날에 물건을 떼다 팔 생각을 하다니 나름 사업 수완은 있었던 모양이다.
'왔다껌'이나 '자야", '눈깔사탕' 같은 과자류 몇 개와 직접 빚은 막걸리만 팔았다. 없는 게 더 많았지만 우리는 맘대로 눈깔사탕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전방 집 옥이를 부러워했다.
옥이 할매는 뽀얀 얼굴에 볼이 항상 발그랬다. 직접 빚은 막걸리를 단지에 담아두고 팔았는데 음료수처럼 심심하면 들이키곤 했으니 주인이 아마도 반은 마셔 버렸을게다.
옥이는 5남매 중 넷째였는데 그 집 막내 딸맥이(딸은 이제 그만의 줄임말) 빼곤 모두 공부를 못했고 얼굴이 빨갰으며 술을 즐겼다. 아마 학업부진에 막걸리가 한 몫하지 않았을까?
동네 중간에 위치한 옥이 전방은 하굣길에 피해 갈 수 없는 유혹적인 쉼터였다. 할매가 안 보는 사이 단지 안에서 부글부글 숙성된 진한 막걸리를 옥이 한 모금, 나 한 모금 꿀떡꿀떡 나눠 마셨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잽싸게.
감주에 비길 만큼 진하고 달고 구수한 맛이어서 술을 마신다는 자각도 죄책감도 딱히 없었다.
술이 조금 오르면 방에 누워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걸 즐기고 흥이 나면 노래도 부르고 잠깐 낮잠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내게 벽에 걸린 못 보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결치는 파마머리를 한 외국인이 종이를 들고 우릴 째려보며 뭔가를 적고 있는 게 아닌가!
"옥아, 저 아저씨 누고''
"니 모르나? 우리 오빠가 카던데 하나님이래"
"뭐 하나님이라고? 근데 지금 뭐 하는데?"
"세상에 나쁜 짓 한 사람들 이름 적고 있잖아"
"엥? 그러면 우리 아까 술 무 따 아니가. 이제 우리 지옥 가나"
"아이다. 술은 먹는 거라 개안타"
옥이의 말에 위안도 잠시, 계속 펜 들고 적는 걸 포기하지 않는 꿋꿋한 기세에 눌려 마침내 우리 둘은 무릎 꿇고 잘못을 빌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느니 횡설수설하면서 심지어 눈물도 쪼금 흘리면서 회개했다. 울면 봐 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이마이 빌었으면 지워 줬겠제"
"그래그래 지웠을 거다"
우린 그날 이후 한동안 막걸리를 안 마셨다. 꼬불머리
아저씨가 째려보는 곳에선 최대한 언행을 조심했다.
몇 년 지나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하여간 음악 책에서 똑같은 파마머리 아저씨를 발견했을 때 꽤 오랫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살게 한 옥이 오빠를 속으로 원망했다.
중학교도 겨우 다녔던 옥이는 그 아저씨의 정체를 결국 알았을까?
집에 어른이 놀러 오면 아버진 늘 조막만한 노란 양은 주전자에 술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난 옥이 단짝 친구여서 무료 시음의 기회가 자주 있었을 뿐, 동네 아이들 모두 술심부름을 많이 했고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냅다 한 모금 드리킹 하기 일쑤였다. 주전자 뚜껑에 덜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주전자 입구를 통째로 들고 쭉 마시는 거라 분명 적은 양은 아니었는데 다들 무탈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나이에 맞지 않는 일탈행동을 참 많이 했는데 어른들은 몰랐던 걸까 아님 모른 체하고 지나갔던 걸까.... 새삼 궁금하다.
나는 지금도 술 중에서 막걸리를 가장 좋아한다. 고향의 맛이다. 시원하고 칼칼한 막걸리 말고 옥이네 전방 구석에 있던 단지 속 찐한 막걸리를 김치 쭉 찢어서 안주 삼아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