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있을 곳 지정하는 법
앞서 우리는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고, 사용하는 장소를 중심으로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원칙들을 바로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장보고 돌아와서 피곤한데, 이걸 다 정리해야 하나..."
"친구 만나고 늦게 들어왔는데, 가방을 비우려니 너무 귀찮은데..."
"이 영수증, 나중에 필요할 것 같은데 지금 어디 넣지..."
ADHD를 가진 우리에게 '정리'란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물건에 대해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꽤나 복잡한 과정이죠.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지,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언제 다시 꺼내볼지...
이런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지쳐버리고 맙니다.
특히 외출했다가 돌아온 직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가방을 비우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놓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티켓을 어디에 둘지, 쇼핑하고 돌아와서 구매한 물건들을 어떻게 분류할지, 이런 결정들이 때로는 너무 버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당장 완벽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임시 보관'이라는 중간 단계가 필요합니다.
우선, 눈에 잘 보이는 한 곳에 물건들을 모아보세요.
책상 한 구석이나 특정 바구니를 '임시 보관소'로 지정하는 거예요.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가방에서 꺼낸 물건들, 지금 당장 어디에 둬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것들은 일단 이곳에 모아둡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쇼핑하고 돌아온 직후라면? 일단 쇼핑백 채로 임시 보관소에
여행 가방을 막 풀기 시작했다면? 세탁할 옷은 분리하고 나머지는 임시 보관소에
책상을 급하게 치워야 한다면? 정리가 필요한 물건들을 임시 보관소에
적어도 물건들이 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낫습니다.
ADHD가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건을 무척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관리'입니다.
임시 보관소는 말 그대로 '임시'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편안한 마음으로 임시 보관소를 들여다보세요.
오늘은 이 중에 무엇을 정리할 수 있을까? 어떤 물건의 자리를 정해줄 수 있을까?
꼭 전부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한두 개의 물건만 제자리를 찾아줘도 충분해요.
에너지가 있을 때 조금씩, 우리만의 속도로 정리해나가면 됩니다.
지난번에는 물건들을 카테고리로 나누고, 사용하는 장소별로 정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리도 결국 우리의 에너지가 충분할 때 가능한 일이에요.
때로는 잠시 멈추어 쉬어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임시 보관소'라는 비상구가 있습니다.
완벽한 정리를 위한 에너지가 없을 때, 결정을 잠시 미루고 싶을 때, 이곳에 잠시 물건들을 맡겨두세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지금 당장 정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닙니다.
이것도 정리의 한 과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