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작은 선물 보내는 법
"아... 또 잊어버렸네."
오늘 오후 2시에 있던 약속을 방금 떠올렸습니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친구가 보낸 부재중 전화만 세 통이 와있네요.
ADHD를 가진 우리에게 시간 관리는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약속을 잡을 때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가도, 정작 그 시간이 되면 깜빡하기 일쑤죠.
게다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다른 일로 전환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약속 알림이 와도, "아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늦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죠.
시작하는 것은 더 큰 난관입니다.
"이제 진짜 해야 하는데..."
"5분만 더 쉬고..."
이렇게 꾸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죠.
업무나 과제의 소요 시간을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1시간이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했던 일이 반나절이 걸리기도 하고,
"이건 정말 오래 걸릴 거야"라고 생각한 일이 의외로 금방 끝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 감각의 차이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죠.
하지만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ADHD의 특성상 시간 감각이 다르고,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기가 어려울 뿐이죠.
다행히도 이런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첫째, '즉시 기록'의 법칙입니다.
약속이 잡히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바로 캘린더에 기록하세요.
"나중에 적어야지"는 없습니다. 그 '나중'은 절대 오지 않으니까요.
즉시 기록할 때는 이런 것들을 반드시 포함하세요:
- 날짜와 시간은 기본
- 만나는 장소 (가능하면 지도 링크도 함께)
- 참석하는 사람들 이름
- 챙겨가야 할 것들
- 이동 수단과 예상 소요 시간
- 특이사항 (ex. 드레스코드, 회비 등)
카톡이나 메일로 약속 정보가 왔다면, 캘린더에 일정을 추가한 후 해당 메시지에 '별표시'나 '북마크'를 해두세요. 나중에 세부 내용을 다시 확인할 때 유용합니다.
둘째, '미리 알림'의 마법입니다.
하나의 알림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뇌는 알림을 무시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이니까요. 여러 겹의 알림망을 쳐두어야 합니다.
중요한 약속이라면 이렇게 알림을 설정해 보세요:
- 하루 전 저녁: 준비물 확인, 옷차림 결정
- 아침 기상 직후: 오늘의 중요 일정 상기
- 3시간 전: 준비 시작 (씻기, 옷 입기 등)
- 2시간 전: 이동 준비
- 1시간 전: 진짜 출발 시간
- 30분 전: 마지막 체크
정기적인 일정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합니다:
- 매주 하는 온라인 수업: 시작 30분 전 컴퓨터 켜기 알림
- 매달 내는 공과금: 납부일 3일 전부터 매일 알림
- 정기 병원 방문: 예약일 일주일 전부터 준비 알림
- 과제 제출: 마감 3일 전, 2일 전, 1일 전, 당일 아침 알림
셋째, '습관화'의 힘을 빌리세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을 확인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일상적인 행동에 일정 확인을 '끼워넣기' 하는 거죠.
아침 루틴에 넣기:
- 첫 커피를 마실 때 오늘의 일정 확인하기
- 양치질하면서 캘린더 훑어보기
- 아침 식사 전 알림 설정 점검하기
저녁 루틴에 넣기:
- 저녁 식사 후 내일의 일정 확인
- 잠들기 전 준비물 체크
- 주말에는 다음 주 전체 일정 살펴보기
출발 전 체크리스트 습관:
- 핸드폰, 지갑, 교통카드 확인
- 준비물 한 번 더 체크
- 날씨 확인해서 우산 필요한지 체크
이런 방법들을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죠. 귀찮기도 하고, 처음엔 익숙해지기도 참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입니다.
허둥지둥 뛰어가는 대신 여유롭게 도착하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마감에 쫓기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일하기.
이런 작은 성공들이 모여서 우리의 자신감을 키워줄 거예요.
시간 관리는 하루아침에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하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도구가 있고, 방법이 있고, 무엇보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