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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우리는 왜 끊임없이 떨어야 하는가

결정론적 질식에 대한 저항

by ToB

[기획 기사] 우리는 왜 끊임없이 떨어야 하는가: 결정론적 질식에 대한 저항


작성자: 칼럼니스트 C (전직 이론물리학부 초빙 연구원)

날짜: 203X. 9. 14.


서론: 집중이라는 이름의 자살 행위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떨거나, 손톱 거스러미를 뜯거나, 혹은 브라우저의 탭을 의미 없이 껐다 켰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장 상사나 부모는 그런 당신을 보며 "정신 사납다"고 혀를 찰 것이다. 현대 사회는 '몰입'을 미덕으로 칭송하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집중력을 높이는 비법서들이 점령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당신의 그 산만함이, 그 하찮고 무의미해 보이는 '틱(Tic)' 증상이 방금 이 세계를 구했다.


비유를 든 것이 아니다. 시뮬레이션 가설 따위의 낭만적인 헛소리도 아니다. 순수한 통계역학이자, 코펜하겐 해석의 가장 섬뜩한 지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관찰이 파동을 입자로 확정 짓는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명제에서, 사람들은 '확정'이 '존재'를 만든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거시 세계에서 지나치게 명확한 확정은 곧 '가능성의 말살'을 의미한다.


이 칼럼은 인류가 맹신해 온 '집중'과 '정적'이 어떻게 확률의 가지를 쳐내고, 우리를 단 하나의 필연적인 비극으로 몰아넣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의 무의식이 어떻게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지에 대한 변론이다.


사건 분석: 청담동 명상 센터의 '완벽한' 붕괴


지난달 14일 발생한 '고요의 숲' 명상 센터 붕괴 사고는 건설사의 부실 시공으로 결론 났다. 언론은 철근 누락을 떠들었지만, 나는 경찰청의 지인이 넘겨준 현장 CCTV 복원 영상을 본 뒤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사고 당시, 센터의 지하 2층 '심연의 방'에는 12명의 수련생이 있었다. 그들은 소위 '절대 몰입'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영상 속의 그들은 미동도 없었다. 기침 소리도,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심지어 눈꺼풀의 떨림조차 없었다. 그 공간의 엔트로피는 극도로 낮아졌고, 모든 변수는 통제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물리학적으로, 관찰자(수련생)들이 주변 환경에 대해 완벽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모든 상태를 '인지'하고 '확정' 짓는 순간, 그 공간의 파동 함수는 잉여 확률을 허용하지 않게 된다. 즉,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과 '무너질 확률'이 중첩되어 있던 상태에서, 그들의 과도한 집중이 관측의 정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자 시스템은 단 하나의 경로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필이면 그 건물의 노후화된 구조 역학이 가리키는 가장 높은 확률은 '붕괴'였다.


평소라면 붕괴 확률이 99%라 해도, 누군가 재채기를 하거나 다리를 떨어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이 양자 중첩을 유지시켜 '아직 무너지지 않은 1%의 상태'를 연명시켰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통 '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날 그 방에는 운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 완벽하게 고요함을 유지했다. 그들의 의식이 공간의 모든 양자적 상태를 '붕괴'라는 단일 고유값으로 수렴시킨 것이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그들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집중이 만들어낸 결정론적 타임라인 속에서 '피한다'는 변수는 이미 소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필연에 깔려 죽었다.


이론적 배경: 양자 제논 효과와 결정론적 질식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 제논 효과(Quantum Zeno Effect)'를 거시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불안정한 양자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관측하면 시스템의 상태가 변하지 않고 고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은 수없는 불확정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날 확률, 커피를 쏟을 확률, 심장마비가 올 확률. 우리는 이 확률들의 파도 위를 위태롭게 서핑하며 살아간다. 이 파도를 유지하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대충 넘어가는 태도'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디테일을 하나하나 확정 짓지 않고 흐릿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우주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유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강박적으로 확정 지으려 한다.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건강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주식 차트의 1초 뒤를 예측하려 든다. 이 집단적인 '확정 강박'이 세계의 유동성을 해친다.


나는 이것을 '결정론적 질식(Deterministic Suffocation)'이라 부른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생명력은 사라진다. 완벽하게 예측된 미래에는 자유의지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당신이 다리를 떠는 행위는, 무의식이 이 숨 막히는 결정론의 감옥 창살을 흔들어 틈을 만들려는 처절한 저항이다.


현장 르포: 뫼비우스의 띠를 끊는 아이들


나는 가장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곳, S 초등학교의 점심시간 교실을 찾았다.


이곳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멀쩡한 지우개를 조각내서 던졌다. 교사들은 괴로워했지만, 내 눈에 비친 데이터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휴대한 휴대용 간섭계(Interferometer)의 수치는 미친 듯이 널뛰고 있었다. 이 교실의 '미래 결정 계수'는 0에 수렴했다. 즉,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주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복도 끝에서 급식 운반용 카트가 미끄러졌다. 바퀴 하나가 빠지며 육중한 국통이 쏟아지며 아이들을 덮치려는 찰나였다.


물리 법칙대로라면, 즉 뉴턴 역학의 결정론적 궤적대로라면 앞서 뛰어가던 아이 두 명은 화상을 입어야 했다. 그 거리와 속도, 국통의 기울기는 아이들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 궤적은 너무나 명확해서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사고 지점 반경 5미터 내에 있던 아이들 여섯 명의 제각각 '무의미한 행동'이 미래를 구했다.


가장 앞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친구의 실내화 주머니를 낚아채 뒤로 던졌다. 다른 아이는 아무 이유 없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던 피해자 A는 갑자기 신발 끈이 풀렸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지저분한 변수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허공을 날던 실내화 주머니가 미끄러지던 카트의 왼쪽 바퀴 밑에 깔렸다. 카트는 덜커덩거리며 궤도가 3도 정도 틀어졌다. 고개를 숙인 A의 머리 위로 뜨거운 국물이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혔다. 주저앉은 아이 때문에 도망치려던 다른 아이들이 발이 엉켜 넘어졌고, 덕분에 2차로 튀어 오른 국물 세례를 피했다.


결과적으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엉켜서 울고불고, 바닥은 국물 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화상을 입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기적처럼 보이는가? 아니다. 확률적 터널링(Probabilistic Tunneling)이다. 아이들의 산만함이 만든 노이즈가, 확정된 재앙의 인과율을 교란시켜 새로운 경로를 뚫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무질서를 통해 생존했다.


인터뷰: 어느 산만한 천재의 고백


나는 이 현상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인터뷰했다. K증권의 전설적인 트레이더이자, 심각한 ADHD 환자로 알려진 최 모 씨다. 그는 인터뷰 내내 펜을 돌리고, 의자를 삐걱거리며,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Q: 당신은 차트를 보지 않고 매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가 있나?

"차트를 뚫어지게 보면요... 차트가 죽는다니까요."


Q: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내가 '오른다'고 확신하고 쳐다보면, 그 확신이 너무 무거워서 그래프가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부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추세가 꺾이고 급락하기 시작하죠. 사람들은 그걸 분석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저주'라고 봐요. 내가 24시간 감시하면 그 기업은 망해요. 내 시선이 그 기업의 모든 변수를 말라붙게 하니까."


Q: 그럼 어떻게 하는가?

"곁눈질로 봐요. 아니, 아예 모니터 옆에 야구 중계를 틀어놔요. 내 뇌의 90%는 야구를 보고, 10%만 주식을 생각하는 거죠. 내가 딴짓을 해야 주식이 숨을 쉬어요.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상태를 유지해 줘야, 운이 좋으면 오르는 쪽으로 튀거든요. 꽉 쥐면 터져요. 세상만사가 다 그래요."


그는 펜을 책상에 탁탁 두드리며 덧붙였다.


"이 소리 들려요? 이게 심폐소생술이에요. 죽어가는 차트 살리는 소리."


자기 고백: 나는 왜 멈출 수 없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나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과학자로서 나는 명료한 결론을 원한다. 이 글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오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두렵다. 내가 이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이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이 하나의 '절대적 진실'로 굳어져 버릴까 봐.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오타를 남긴다. 문단을 엉망으로 배치하고, 필요 없는 접속사를 남발한다. (지금 이 괄호 안의 문장처럼 쓸데없는 사족을 붙인다.)


이것은 나의 생존 본능이다.


어젯밤, 나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섬뜩한 경험을 했다. 너무나 조용한 밤이었고, 책의 내용에 완벽하게 몰입해 있었다.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나와 책상과 공기 중의 먼지까지 하나의 단일한 시스템으로 동기화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심장이 멈출 것이라는 '확신'을 느꼈다.


건강 검진 결과와 상관없이, 그 적막 속에서 내 심장 박동의 다음 비트가 찍혀야 할 확률적 위치가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통증을 느낀게 아니다. 그냥 정원이 꺼지는 듯한 명료한 자극이 느껴졌다.


그때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책상 위의 머그잔을 쳐서 떨어뜨렸다.


와장창.


그 파열음이, 그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사기 조각들이, 바닥을 적시는 커피의 불규칙한 얼룩이 나를 살렸다. 그 소음이 다시 불확정성을 불러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깨달았다. 방금 나는 내 집중력이 만든 단두대에서 탈출했다고.


결론 및 제언: 소음에 대한 옹호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좀 있어!"라고 소리친다. 수험생에게 "잡념을 버려라"라고 강요한다. 명상 센터와 독서실은 정숙을 강요한다.


그러나 인류여, 제발 멈추지 마라.


당신의 아이가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한다면, 교실이라는 폐쇄계가 결정론적 붕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환기'를 시키는 중이다.


당신이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중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뇌가 실패의 확률을 100%로 고정하지 않기 위해 샛길을 파는 중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덜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확률적 닻'이다.


이 우주가 인과율의 무거운 사슬에 묶여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끊임없이 촐싹대며 부력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다리를 떨어라.

볼펜을 딸깍거려라.

옆 사람의 말에 딴청을 피워라.


당신의 그 사소하고 무례한 산만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려던 필연적인 비극을 '우연한 해프닝'으로 비틀어 놓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나는 이 문장을 끝으로... 잠시 멍을 때려야겠다. 이 글이 너무 완벽해지기 전에.


[첨부 자료]


Figure 1. 3학년 2반 교실의 소음도와 사고 발생률의 반비례 그래프

Audio File. K 트레이더의 펜 돌리는 소리 (BPM 128) - 불면증 치료용으로 권장됨




수신: K

발신: 편집장


자네가 보낸 원고 <우리는 왜 끊임없이 떨어야 하는가>, 잘 봤네.


흥미롭더군. 다만, 이 글이 나가면 학부모 단체나 명상 협회 쪽에서 항의가 빗발칠 거야. "산만함을 조장한다"느니 "과학을 핑계로 애들 버릇 망친다"느니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싣기로 했네.


이유는 단순해. 내가 이 원고를 교정 보는 동안 사무실 형광등이 깜빡거리더군. 평소 같으면 시설팀을 불렀겠지만, 자네 글을 읽고 나니 그 깜빡임이 왠지 안도감을 주더라고. 형광등 필라멘트가 끊어질 '운명'을 그 깜빡임이 지연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추신: 자네 글 6번째 문단에 "그냥 전원이 꺼지는 듯한 명료한 자극이 느껴졌다." 부분 말일세. 거기 오타가 하나 있더군. '전원'이 아니라 '정원'이라고 썼더구먼.

수정하려고 했는데, 자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려서 그냥 뒀네. "오타를 남긴다"고 했지? 그래, 그 오타 덕분에 자네 글이 '완벽한 죽은 글'이 되지 않았다고 치지.


그대로 인쇄 넘기겠네. 아, 그리고 나도 지금 다리 떠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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