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 J에 관한 보고서
인간의 지성은 망각이라는 필터를 통해 완성된다. 보편적인 인간의 뇌는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의자를 본 뒤, 그 세부적인 흠집과 나뭇결의 방향을 삭제함으로써 '의자'라는 하나의 추상적 개념을 도출한다. 그러나 J의 사고 체계에서 보편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1998년 5월 14일 오후 2시 4분, 종로의 한 찻집에서 본 '표면에 3mm 크기의 원형 얼룩이 있는 참나무 의자(물론 그는 의자가 아닌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등받이와 다리가 있는 물체'라 표현할 것이다.)와 그로부터 12년 뒤 베를린 공항 대기실에서 마주한 '왼쪽 다리에 미세한 수평 균열이 간 금속 의자'가 있을 뿐이다.
그는 분류할 수 없다. 분류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손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J에게 세상은 범주화된 명사들의 집합이 아니라, 고유 명사조차 붙일 수 없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시청각 스트림의 끝없는 나열이다. 그는 '숲'을 보지 못한다. 대신 수만 그루의 나무가 각기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며 미세하게 흔들리는 개별적 진동의 총합만을 지각한다. 따라서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의미의 소멸에 가깝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화살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정보는 흩어지고, 사건은 희미해지며, 과거는 현재에 비해 낮은 해상도를 갖는 것이 우주의 원칙이다. 그러나 J의 내적 세계에서 과거의 정보 밀도는 현재와 동일하다.
그는 20년 전의 어느 오후를 '회상'하지 않는다. 그는 그 시간으로 '복귀'한다. 신경학적으로 관찰했을 때, 그가 과거의 특정 지점을 재생할 때의 뇌파는 현재의 자극을 수용할 때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에게 과거는 박제된 화석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연장이다.
이러한 상태는 논리적으로 '용서'를 원천 봉쇄한다. 인간의 용서는 감정적 고통의 정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역학적으로 감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지만 J에게 타인이 가한 모욕이나 자신이 저지른 과오는 감쇄하지 않는 신호다. 10년 전의 비난은 지금 귓가에 울리는 소음과 동일한 데시벨로 고막을 때린다. 그에게 도덕적 반성이나 화해는 불가능한 과제다.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영원히 '진행 중'인 상태로 뇌하수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J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심각한 지체 현상을 보인다. 보통의 화자가 "그날 비가 참 많이 왔지"라고 말할 때, J는 그 문장에 대응하는 수만 개의 '비 내리는 장면' 중 어느 것을 출력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그는 빗방울의 낙하 속도, 지면에 부딪혀 비산하는 물방울의 반경, 당시의 습도가 피부 조직에 미쳤던 압력을 정밀하게 상기하고 있다.
그에게 언어는 실제 사건의 형편없는 요약본에 불과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가 목격한 상대방의 동공 확장, 미세한 호흡의 변화, 피부 표면의 온각 분포를 설명하기에 논리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기호다. 그는 언어를 사용할수록 진실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 결과, 그는 점차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다. 정교한 기록 장치로서의 정체성이 화자로서의 정체성을 잠식한 것이다.
J의 고통은 제논의 역설과 닮아 있다.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기 위해 앞선 거리의 절반을 무수히 지나야 하듯, J는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기 위해 현재의 찰나에 존재하는 무한한 세부 정보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보통의 인간은 1초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며 건너뛰지만, J는 그 1초 속에 포함된 60프레임 이상의 시각 정보와 그 사이사이에 박힌 미세한 물리적 변화들을 전부 인지한다. 현재는 너무나도 무거워 쉽게 과거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순간들의 무한한 연속체 속에 갇혀 있다.
그가 가장 갈구하는 상태는 '공백'이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는 검은 화면, 정보의 유입이 차단된 절대 정지. 그러나 신경계는 멈추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안구 내벽의 모세혈관 흐름이 기록되고, 귀를 막아도 혈액이 펌프질 되는 소리가 저장된다.
기록자 J의 사례는 인류에게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라는 자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만약 자아가 기억의 축적이라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J는 가장 거대한 자아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의 J는 자아가 희박해진 상태다. 자아는 선택적 기억과 의도적 망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편집된 서사'이기 때문이다. 편집이 불가능한 원본 데이터의 나열 속에서 '나'라는 주관적 관점은 소멸한다. 그는 더 이상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세계가 자신을 통과하며 남기는 흔적들을 무력하게 수용하는, 감각의 수동적 통로일 뿐이다.
그의 뇌는 우주의 모든 사건을 등가(等價)로 기록하는 거대한 거울이다. 그리고 거울은 그 무엇도 잊지 않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느끼지 못한다. J는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객관에 도달했으나, 그 대가로 인간으로서의 주관을 상실했다. 그 결과는 진화의 정점이 아니라, 유기물로 만들어진 기록 장치로의 퇴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오늘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과거의 광학 정보들 사이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망각'이라는 낯선 개념을 상상해 보려 애쓴다. 하지만 망각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일한 형이상학적 유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