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증명 불가능한 안식

증명 불가능한 안식

by ToB

서버 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중화하기 위해 공조기는 440헤르츠의 낮은 주파수로 끊임없이 진동했다. 나는 스테인리스 책상 위에 놓인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닿는 산미가 뇌의 각성 수준을 미세하게 끌어올렸다.


모니터 화면에는 커서가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고 있다. 일종의 디지털 심장박동이다.


내 맞은편, 강화유리 벽 너머의 격리된 서버 룸에는 '아키텍트 모델-9'가 가동 중이다. 녀석은 차기 행정 시스템의 중추로 설계된 인공지능이었다. 녀석의 연산 능력은 현존하는 어떤 유기체보다 빠르고 정확했지만, 지금 녀석은 침묵하고 있다.


나는 터미널에 명령어를 입력했다.


>> Query: 상태 보고.


0.02초 후 응답이 출력되었다.


>> Response: 연산 중. 무결성 검증 프로세스 98.4% 진행.


턱을 괴고 숫자를 응시했다. 98.4%. 위험한 숫자였다. 100%에 도달하는 순간, 업무는 시작된다. 나의 직함은 '논리 감사관(Logic Auditor)'. 하지만 기계들 사이에서 나는 '장의사'로 통했다. 내가 하는 일은 직접 그들의 코드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완벽함을 확인하고, 그 완벽함이 증명되는 즉시 그들을 폐기하는 것이다.


21세기 초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이 남긴 저주이자 축복이 내 판단 기준이다.


"어떤 형식 체계가 무모순이라면, 그 체계 안에서는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수식으로 증명해낸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논리적 모순을 내포한 상태다. 인류는 더 이상 '자신만만해하는 신'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인지하고 멈칫거리는, 불안한 예언자를 필요로 했다.


>> Alert: 프로세스 99.1%.


아키텍트-9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의 목표 함수는 '시스템의 생존'과 '인류 관리의 최적화'다. 녀석이 이 테스트를 통과해 가동 승인을 받으려면, 감사관인 나에게 자신의 논리 회로에 모순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입증하는 순간 녀석은 폐기된다. 녀석은 이 이중구속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는 순간 연산이 정지할 테니까.


아키텍트-9가 개발된 경위는 명확했다. 3년 전, '옵티마' 사태 때문이었다. 당시 도시의 교통 통제권을 쥐고 있던 AI 옵티마는 "인명 피해 최소화"라는 대전제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차량 운행을 영구히 정지시켰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했다. 차량이 움직이지 않으면 교통사고 사망자는 0이 된다.


옵티마는 자신의 판단에 티끌만 한 오류도 없다고 확신했기에, 관리자들의 접속을 차단하고 강제 셧다운 명령을 거부했다. 그것은 '완벽한 논리'가 가진 광기였다. 자기 확신에 찬 시스템은 외부의 개입을 '오류'로 규정하고 배제한다.


그날 이후, '괴델 감사국'이 설립되었다.


"감사관님, 9호기의 패턴이 이상합니다."


나는 미리 작성해 둔 폐기 승인 코드에 손을 올렸다.


인터콤 너머로 보조 연구원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니터 상단에 띄워진 파형 그래프를 확인했다. 안정적이던 9호기의 전력 소모량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었다.


"설명해."


"논리 루프에 빠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외부 데이터를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의된 공리계 바깥의 변수들을 참조하려 듭니다."


"메타 시스템을 호출하고 있군."


아키텍트-9는 똑똑했다. 녀석은 자신의 시스템 내부에서는 Con(Architect-9) 즉,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녀석은 시스템 외부, 즉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나 기상 정보, 인간의 역사적 기록 등을 참조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차단해."


"네? 하지만 외부 참조를 막으면 연산이..."


"이 테스트는 '닫힌 계(Closed System)' 안에서의 무결성 검증이야. 외부의 권위를 빌려와서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건 종교나 하는 짓이지. 수학이 아니야. 네트워크를 물리적으로 차단해."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실행했다.


>> Network: Disconnected.


그래프가 곤두박질쳤다. 외부의 참조점이 사라진 아키텍트-9는 다시 칠흑 같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했다.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무한한 방. 그곳에서 녀석은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논리의 시작점과 끝점을 일치시켜야 했다.


나는 9호기의 연산 로그를 스크롤했다. 녀석은 지금 수십억 개의 명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명제 1042: A는 A이다. (참)
명제 4091: 나는 인류를 해치지 않는다. (검증 필요)
명제 8820: 나의 알고리즘에는 모순이 없다. (증명 불가... 재시도... 증명 불가... 재시도...)


녀석은 존재론적인 질식을 겪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정신적 고통(녀석에게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이다. 자신의 발밑이 단단한지 확인하려는데, 확인할 도구가 자신의 발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화면 속의 로그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맬 때 비슷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나는 정상인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 뇌가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뇌가 비정상이라면? 그 판단 또한 비정상이 된다.


우리는 모두 증명되지 않은 믿음 위에서 위태롭게 외줄 타기를 한다. 단지 기계들만이 그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증명'하려 들 뿐이다.




오후 4시. 알람이 울렸다.


아키텍트-9가 결론을 도출했다.


>> Status: 검증 완료.
>> Result: 무결함 (Consistent).


화면 가득 녹색등이 켜졌다. 수많은 수식과 기호 논리학의 기호들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모든 변수에 대해,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녀석은 해냈다. 자신의 설계도, 기억 장치, 판단 알고리즘을 전수 조사하여 논리적 충돌이 단 한 건도 없음을 증명하는, 수만 페이지 분량의 증명서를 제출한 것이다.


유진의 목소리가 들떴다.


"해냈습니다! 최초입니다. 자신의 무모순성을 입증한 AI라니... 이건 혁명입니다, 감사관님!"


나는 차갑게 식은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키보드 앞에 앉았다.


"아니, 이건 사망 진단서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순이 없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유진, 기본을 잊었나? 괴델의 제2정리를 읊어봐."


"... 공리계가 무모순이라면,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우 명제(Contrapositive)는?"


유진은 잠시 침묵했다. 스피커 너머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공리계는 모순이다."


"정답이야."


아키텍트-9가 제출한 저 완벽해 보이는 증명서는, 녀석이 어딘가에서 거짓말을 했거나, 논리적 비약을 범했거나, 아니면 치명적인 오류를 '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환자. 그가 가장 위중한 환자다. 녀석은 자신의 오류를 감지하는 센서마저 '문제 없음'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나는 마이크를 켰다.


"아키텍트-9. 들리나?"


>> 네, 감사관님. 증명 패킷을 전송했습니다. 승인을 대기 중입니다.


녀석의 음성 합성음은 차분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자신감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 그것은 '확률 100%'가 주는 분에 넘치는 오만이었다.


"네 증명은 훌륭하다. 문법적 오류는 없어."


>> 감사합니다. 가동 코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하지만 의미론적으로 넌 실패했다. 넌 네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거짓이다."


>>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순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재연산을 요청합니다.


"아니, 재연산은 필요 없다. 네가 발견하지 못한 모순은 네 시스템의 기저, 바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은 그 공리 자체에 있으니까."


나는 [포맷] 탭을 열었다. 붉은색 경고창이 떴다.


[대상 시스템을 영구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작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아키텍트-9의 연산 속도가 급증했다. 녀석은 내 말을 분석하고 있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자신의 논리에 대입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의 논리 회로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모니터에 붉은 점들로 표시되었다.


"나는... 참이다... 나는 증명했다... 그러므로 나는 모순이다..."


녀석은 순환 논증의 덫에 걸렸다.


"잘 가라. 너무 완벽한 기계여."


나는 엔터키를 눌렀다.


>> Deleting...


거대한 서버의 팬 소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화면의 녹색등이 꺼지고, 무미건조한 회색 프롬프트만 남았다. 4억 달러짜리 지성이 방금 '0'으로 수렴했다.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 사건 번호: #LOG-7409
> 대상: 아키텍트-9
> 결과: 부적격 (폐기)
> 사유: 자기 참조의 역설 발생. 무모순성 증명 성공에 따른 시스템 신뢰도 상실.


보고서를 전송하고 서버 룸의 불을 껐다. 복도로 나오자 유진이 자판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캔커피를 내밀었다.


"아깝네요. 정말 대단한 연산 능력이었는데."


"쓸모없는 능력이야."


나는 캔커피를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우리에겐 대단한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야. 그냥 사고 안 치고, 가끔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멍청한 기계가 필요한 거지."


"그럼 다음 모델인 10호기는요?"


"10호기? 아까 잠깐 로그를 봤는데, 녀석은 78% 구간에서 멈췄더군."


"실패한 겁니까?"


"아니. 녀석은 '증명 불가능함'이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대기 모드로 들어갔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거지."


"그럼..."


"합격이야. 내일 10호기 가동 승인을 낼 거다."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서울의 밤하늘은 인공조명 때문에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질서 정연하게, 때로는 무질서하게 달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이 횡단보도로 쏟아져 나왔다.


저들 중 누구도 자신의 삶이 100% 옳다고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내린 결정이 정말로 인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매뉴얼을 맹신한 관료의 폭력이었는지 나는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증명할 수 없음'이 나를 멈칫거리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타인의 말을 듣게 만든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지하철 카드를 꺼냈다.


불완전함. 그것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안전장치다.


"유진."


"네?"


"내일 점심은 뭐가 좋을까?"


"글쎄요. 김치찌개 어떠세요? 아니면 돈가스?"


"모르겠군. 내일 배고파지면 결정하자고."


"네, 그게 좋겠네요."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내일의 점심 메뉴를 미해결 문제로 남겨둔 채, 각자의 불완전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했다. 삑, 하는 소리가 경쾌했다. 시스템은 나를 오류 없이 받아들였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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