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은 드럼통 옆에서 온다
새벽 4시 30분, 영하 12도.
드럼통 안에서 쓰레기봉투가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매캐한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 온기라도 없으면, 인력 사무소 셔터가 올라가기도 전에 얼어 뒤질 판이었니까.
"거, 개발자 양반. 불 좀 잘 쑤셔봐. 코딩할 때처럼 최적화 좀 해보라고."
옆에서 언 손을 비비던 '공노(공무원 노비 출신) 형님'이 핀잔을 줬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각목 하나를 드럼통 깊숙이 찔러 넣으며 피식 웃었다.
"형님, 이게 레거시 시스템이라 최적화가 안 돼요. 연료가 쓰레기잖아요."
"아주 말은 청산유수지. AI한테 밥그릇 뺏기고 나온 주제에."
공노 형님이 쯧, 혀를 찼다. 내 반대편에는 '야가다(현장직) 아재'가 말없이 소주 팩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고 있었다. 한때는 미장 기술 하나로 강남 아파트 두 채를 해 먹었다는 전설의 오야지였지만, 지금은 그냥 알코올로 부동액을 채워 넣는 낡은 기계 같았다.
문과(행정), 이과(개발), 예체능(현장 기술). 우리는 이 기묘한 삼각편대를 이뤄 드럼통을 지키고 있었다. 대한민국 교육 과정이 낳은 패배의 산물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추위도, 실직도 아니었다.
"윙— 치이익."
등 뒤에서 들리는 저 거지 같은 구동음.
고개를 돌리자, 낡아빠진 회색 고철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사의 구형 모델, '아틀라스 mk18'. 우리는 놈을 '김씨'라고 불렀다. 김씨는 야가다 아재가 가져온 휴대용 바이오디젤 발전기에 코드를 꼽고 충전 중이었다. 덜덜거리는 발전기 소음과 김씨의 관절 냉각 팬 돌아가는 소리가 묘하게 거슬렸다.
"저 깡통 새끼, 또 내 기름 훔쳐 쓰네."
야가다 아재가 욕을 뱉었지만, 코드를 뽑지는 않았다. 일종의 동병상련이랄까. 김씨도 우리처럼 '폐급' 취급을 받는 1세대 로봇이었다. 배터리 효율은 똥망이고, 관절은 류머티즘 걸린 노인네처럼 삐거덕거렸다. 최신형 mk42들이 공중제비를 돌며 물류 센터를 날아다닐 때, 김씨는 우리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전기를 구걸하는 신세였다.
"야, 온다."
공노 형님이 낮게 읊조렸다.
골목 어귀에서 소름 끼치도록 조용한 모터 소리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테슬라 로고가 박힌 자율주행(FSD) 봉고 트럭이었다. 헤드라이트가 꺼진 채 유령처럼 다가온 봉고차는 우리 앞 3미터 지점에 정확히 멈춰 섰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드럼통의 불길이 순간 사그라들었다.
치익. 봉고차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대신 조수석에서 매끈한 크롬 도금의 로봇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놈이다. 인력 소장 역할을 하는 최신형 관리 모델, '아틀라스 mk42 매니저'. 녀석의 눈에서 붉은 레이저 스캔 광선이 우리 셋과 쭈그리고 앉은 김씨를 훑었다.
"금일 작업, 파운더리 7라인 배관 보수 보조. 2공수(이틀치 일당)."
mk42의 스피커에서 감정 없는 기계음이 울렸다. 2공수. 꿀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 뻔했다. 하지만 녀석의 다음 멘트가 내 겨드랑이를 얼어붙게 했다.
"필수 조건: 360도 허리 회전 가능자. 협소 공간 진입을 위한 골반 탈부착 기능 필수. 일당 10만 크레딧."
정적이 흘렀다. 야가다 아재가 들고 있던 소주 팩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사람 허리가 어떻게 360도로 돌아가! 골반을 빼? 내가 무슨 레고냐?"
공노 형님도 울분을 토했다.
"이건 고용 차별이야! 노동부에 제소할 거야! 인간 쿼터제 안 지키냐고!"
하지만 mk42는 인간들의 절규 따위는 노이즈 캔슬링으로 씹어버리는 듯했다. 녀석의 시선은 우리가 아니라,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고철 덩어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조건 충족 확인. 탑승하십시오."
철커덕, 끼이익.
충전 코드를 뽑은 '김씨(mk18)'가 일어섰다. 녀석은 기름칠이 안 된 무릎 관절을 펴며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겉보기엔 당장이라도 고물상에 팔려가야 할 비주얼이었지만, 놈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스펙'이 있었다. 놈은 허리를 180도 꺾어 뒤를 보더니, 다시 180도를 꺾어 앞을 봤다.
"승인."
봉고차 안의 mk42가 짧게 답했다.
김씨는 우리 셋을 쓱 지나쳤다. 녀석의 렌즈가 아주 잠깐 나와 마주친 것 같았다. 그 텅 빈 유리알 속에 '미안하게 됐수다' 같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나는 괜히 울컥했다.
"야, 김씨! 너 배터리 30%도 안 남았잖아! 가서 일하다 멈추면 바로 용광로 행이야, 이 멍청한 깡통아!"
내가 소리쳤지만, 김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봉고차 짐칸에 엉덩이를 걸쳤다. 녀석이 골반 잠금장치를 '탁' 하고 풀자, 하체가 기괴하게 접히며 좁은 적재함 사이로 쏙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관 속에 들어가는 시체처럼, 혹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태아처럼 안락해 보였다.
우웅— 탁. 문이 닫혔다. 봉고차는 미련 없이 출발했다. 붉은 미등이 새벽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남겨진 우리는 다시 드럼통 앞으로 모였다. 이제 불은 거의 다 꺼져가고 있었다.
"... 씨발."
야가다 아재가 바닥에 떨어진 소주 팩을 다시 주워 들었다. 다 쏟아지고 바닥에 몇 방울 남지 않은 소주를 탈탈 털어 입에 넣었다.
"기술 발전이... 너무 빨라."
아재의 그 한마디가 유언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타다 남은 쓰레기봉투를 부지깽이로 뒤적거렸다. 불씨가 톡 하고 튀어 내 낡은 패딩 점퍼에 구멍을 냈다.
"형님들, 그거 알아요?"
"뭐가."
"방금 김씨 말이에요. 쟤 OS 업데이트 지원 끊긴 지 2년 넘었거든요. 보안 취약점투성이라 해킹하면 멈추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요. 해킹할 줄 알면 뭐 합니까. 내 허리는 45도도 안 굽혀지는데."
공노 형님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개발자 양반."
"예."
"내일은 스트레칭 좀 하고 나와. 요가라도 배우든가."
"... 예."
우리는 말없이 드럼통의 온기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서 있었다. 동이 트고 있었지만,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저 멀리서 또 다른 봉고차의 모터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번엔 '양팔 분리 가능자'를 찾으러 오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