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았다. 자신감이 부족했고 늘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런 나약한 내면을 감추며 강인한 척, 밝은 척 살아왔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마주해 본다.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경제적 어려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타인의 비판과 평가에 쉽게 휘둘리는 연약한 마음까지—나의 내면에는 감추고 싶은 약점들이 가득했다.
3년 전, 생계를 위해 전공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발을 들였다. 단순히 무관한 정도가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였다. 낯선 환경 속에서 실수할까 두려워 매일을 긴장 속에 살았고, 부족함이 들통날까 싶어 안간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곳은 험한 말이 일상이 되고, "먹고살기 힘들다"는 한숨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마치 그 시절 나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소화가 되지 않아 식욕이 사라졌고, 겨우 음식을 넘겨도 체중은 계속해서 줄어만 갔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의 붕괴로 이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숨긴 채 일을 이어갔다. 아프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해고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직장을 잃으면 한 달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버텨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내면의 속삭임이 들리던 그날까지.
하지만 일을 그만두는 것조차 두려웠다. 여전히 나는 겁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내게 기적처럼 찾아온 것은,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였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책이 그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저자의 이야기는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울렸다. 아마도 나 역시 몇 년 전 직장암으로 죽음의 공포를 마주했기에, 그의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책 속 한 구절이 특히 나를 흔들었다.
"세상에서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판단하거나 증오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증오하는 데서 나온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증오하며 살아왔는지를. 자신의 어떤 부분도 사랑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 병을 불러왔고, 부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환경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이다.
"두려움 없이 너의 삶을 살아라."
이 한 문장이 내 영혼을 깨웠다.
그렇게 나는 용기를 내어 그 회사를 떠났다. 부모님의 걱정과 생계에 대한 불안,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이번만큼은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내 삶에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매일 새벽 도서관으로 향하며 책을 읽었고,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명상과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렸으며, '살아가는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100일 동안 매일 100번씩 써 내려가며 내 꿈을 구체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지금은 이렇게 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변하자 주변 환경도 함께 변화했다. 예전에 꿈꾸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어가고 있지만, 때로는 여전히 두렵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문장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실패할까 봐 걱정만 한다. 하지만 진짜 실패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이 모든 변화는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적과도 같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진 채 나만의 육하원칙을 만들어가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책장을 넘기며 내일의 나를 그려본다. 두려움 대신 희망으로, 불안 대신 설렘으로 채워질 새로운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