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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삶

비하인드

당신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by 쉴만한 물가

몇 해 전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교라는 곳은 모든 정보나 의사결정이 부모를 거쳐서야 이루어지는 초등과는 달리 아이가 스스로 의사결정 하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과학탐구나 도서부, 방송부에 들기를 바랐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피구부에 가입한 것이 그랬고 밴드부 보컬 오디션 연습을 위해 코인 노래방에 가야 한다는 소식을 통보받았을 때도 그랬다.

이미 저질러진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 무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 내일 아침에는 피구부 연습이 있어서 8시까지 가야 해. 그러니까 7:20분에 밥을 먹게 준비해 줘."

"아~ 그렇게 일찍? 그럼 일찍 일어나야 하니 빨리 자야겠다~"


아침에는 주 3회 피구부훈련이 한 시간씩 있었고 하교 후에도 훈련이 있었다.

하교 후 학원에 가야 하는 친구들은 학원 시간을 적어 피구부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고, 학원 스케줄을 제출 한 친구에 한해서는 하교 후 훈련이 제외되었다.


큰 아이는 피구부 생활을 3년 내 이어갔고 큰 아이가 중3이 되던 해 두 살 터울 동생도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절친에 가깝도록 친한 자매 었기에 동생은 당연히 피구부에 가입해야 한다는 언니의 가스라이팅에 세뇌되어 피구부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피구부 선생님과 선배들이 함께 심사하는 오디션은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했다. 운동능력이 중요한 건 당연했고 불량스럽거나 소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선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선배 언니들의 화력이 보통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큰아이는 오디션을 앞둔 동생을 위해 틈만 나면 밤낮이고 주말이고 끌고 나가 공 던지고 받기 훈련을 시켰다.


"너 그렇게 해서는 합격 장담 못해. 아직 안정권 실력은 아니야. 오디션까지 더 연습해야 돼."


태권도 3품에 달리기, 줄넘기 등 각종 체육행사에 반 대표로 선발되던 동생이지만 공을 무서워한다며 던지고 받기 훈련에 열심이었다. 시험은 하루 전 벼락치기 전문이지만 피구부 오디션은 한 달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언니의 기대에 부흥해 동생은 4:1 정도의 오디션을 거쳐 피구부에 조인할 수 있었다.

태권도 외에 학원이 없었던 자매는 아침저녁으로 피구부 훈련에 열심이었다.


지난여름 시에서 주최하는 시장 배 여중생 피구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시에서 1등을 하는 학교는 시 대표 자격으로 도대회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저마다 도대회라는 부푼 꿈을 안고 새 유니폼도 맞추고 서로 손발을 맞추며 집중해서 훈련했다.

시 대회를 앞두고는 주말도 반납하며 대회준비에 열심이었다.

멀지 않은 중학교에서 열리는 시 대회가 궁금해 응원하러 가겠다고 물어봤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응원 오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과 의식하느라 잘 못할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섭섭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허락 없이 찾아갔다가 돌아올 원망이 두려워 조용히 집에서 응원을 하기로 했다.

소식이 궁금하니 중간중간 소식을 전해달라고 당부하며 당일 대회장소로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걸려온 전화는 첫째 딸이었다.


" 엄마! 우리가 1등 했어~ 그래서 지금 모두 회식하러 가~"


KakaoTalk_20250303_171402229.jpg 점프볼을 따낸 큰 아이


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며 한껏 들뜬 목소리에서 아이의 기쁨이 전달되었다.

수고했다며 교장선생님께서 무한리필 갈빗집에서 회식을 열어주신다고 했다.

타 학교와 연습경기도 모두 이기며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한 달 뒤 아이들은 도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승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두 시간 거리의 타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버스를 대절해 타고 간다고 했다. 언제 돌아오게 되냐는 질문에 경기에 계속 이기면 하루 자고 결승 경기까지 치르게 되고 중간에 떨어지면 바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아이들은 이기면 어디서 자게 될지 모르겠다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일요일 오후 교회에서 아이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 큰 아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첫 경기는 이겼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져 바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왕 도대회까지 간 거 우승 아니 본선이라도 진출했다면 좋았을 텐데, 열심히 연습한 아이들이 느꼈을 좌절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졌지만 잘 싸운 아이들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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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 흘러 큰아이의 졸업식 날, 졸업식이 끝나 친구들과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고 맛있는 점심을 먹자며 가려는데 체육관에서 피구부 모임이 있어 거길 가야 하니 먼저 집에 가있으라고 했다. 졸업하는 선배를 위한 피구부 선생님과 후배들의 송별회가 있다며.. 그런 건 좀 미리 하면 안 되나, 졸업식 마치고 아이는 간데없고 부부 둘이 돌아오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선물꾸러미와 롤링페이퍼가 들려 있었다. 롤링페이퍼에는 앞뒤로 꽉꽉 채워진 후배들의 편지가 그녀들의 끈끈함을 대변해 주었다. 수많은 연습 경기를 통해 땀 흘려 연습했던 너희들의 모습,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나눴을 너희들, 씁쓸한 패배를 맛보고 더 열심히 하자며 결의했을 너희들의 모습이 켜켜이 쌓여 한 장의 편지가 되어 돌아왔다.

선후배, 선생님과 눈물의 송별회를 마치고 돌아온 너의 얼굴에는 중등 생활을 후회 없이 마쳤노라는 환한 빛이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너의 중학교 생활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최근 나에게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방과 후와는 달리 늘봄교실 책놀이 수업은 방학에도 계속되었다. 학기 중 늘봄교실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방학 중 늘봄교실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달라 겨울 방학 두 달 정도의 수업은 두세 명의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처음 오는 멤버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학 전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주에는 방학멤버와도 마지막 수업을 마치며 아이들에게 만족도 조사를 부탁했다.

글씨 쓰는 걸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그걸 왜 해야 하는 거냐며 물어왔고 너희들이 느꼈을 마음을 그대로 적어주면 선생님이 다음 수업 준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하니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직은 표현이 서툴고 한글을 쓰는 게 어려운 친구들도 있어 길게 답하진 않았지만 마음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단어는 장문의 편지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마지막 수업 두 시간을 제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던 기호와의 첫 만남이 기억이 났다.

착석이 안되고 한글을 잘 모르며 아주 예민한 아이라 1학기에는 기호의 엄마로부터 학교에 민원이 몇 차례 발생했다는 얘기를 실무사 선생님께 전달받았다. 그런 기호는 어떤 날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속상하다며 눈물을 흘렸고, 다른 날에는 수업 시간 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어 다녔다. 수업의 흐름을 끊지 않는 범위 안에서는 기호를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지만 감정이 섬세한 아이라 금방 추스러지 지는 않았다.

그런 기호가 수업 막바지에는 수업시간 내 80% 이상 착석을 했고 표정이 밝아졌으며 수업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학기부터 수업을 맡았으니 6개월간 기호의 여정은 눈부신 성장이었다.

활동지에 온통 검정과 빨간색을 사용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던 기호가 빈칸도 채워 넣고 활동지를 마친 후 뒷면에 그리고 싶은걸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6개월간 소소한 변화들이 눈에 띈다.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던 아이가 손을 들고 발표하는 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던 아이가 스스로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말끝에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하던 아이가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목격하는 일.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날마다 조금씩 자란다.

너희들과 나만 아는 우리들의 비하인드를 조금씩 더 자주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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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과 나의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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