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끝인 줄 알았다. 아니다 달리 사는 세상이다.
끝이 있으니 좋다
일하고 땀 흘리는 게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소름 끼칠 일이다
그게 끝났다
긴 여정이 끝났다
입시, 졸업, 취직, 승진
결혼, 출산, 육아, 사회적 책임의 연속
매 고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평생 하던 일이
갑자기 없어지니 무언가 허전하다
일이 우선이던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일이 되고
그 일이 멈추니 나도 멈춘 듯하다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자존감마저 위협받는
무서운 일의 습관이다
이제는 성취를 멈춰야 한다
대신 내가 살아 있음으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일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온 세상이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자들은
땀 흘리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노동의 저주를 받았다
그 뒤로 인류는
노동의 가치를 신성하게 여기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세월이 그 노동의 굴레를
벗겨내었다
땀 흘리고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원죄로 입혀진 노동의 저주가
벗겨졌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에덴동산의 거주권을
다시 부여받은 셈이다
이제는 나에게만 집중해도
이기적이라 비난받지 않는다
이제는 멈춰있어도
누구도, 스스로도
질책하지 않는다
이제는
건강히 살아만 있어도
잘했다 소리 듣는
그런 시간이다
아니 그 따위 칭찬이나 격려조차도
필요 없는 시간이다
은퇴가 만든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다
누구나 은퇴한다. 그게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사람도 은퇴한다. 은퇴하면 퇴물이 된다는 칙칙한 느낌은 아무리 포장해 봐도 신선한 맛을 내기 어렵다. 은퇴라는 주제도 그리 매력적인 글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그려왔던 인생의 그림을 한 순간에 바꾸는 일은 누구에게나 엄청난 일이다. 그렇기에, 그 의미를 되씹어 봄 직도 하다.
은퇴를 맞은 중노년 남성들은, 절대 권력을 내려놓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랑할 것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도 마땅치 않다. 그저 “떠날 때는 말없이”가 가장 쿨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온전히 은퇴자 본인의 몫이다. 운 좋게 노후대비라도 되어 있으면, 은퇴는 Blessing이다. 그렇지 않으면 은퇴는 또 다른 인생의 고비가 된다. 그렇게 조용히, 아니면 불안하게 은퇴를 맞이한다.
50,60대는 아직은 건강해서, 국가가 인정하는 경제활동인구이다. 그리고 대부분 수입 창출을 위해서 활동한다. 이는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본인이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데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다들 무언가 하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을 하든 혹은 노후를 즐기든, 은퇴 후 삶은 전혀 다른 연출이 필요한 무대이다. 무대의 목적도, 연기자의 마음가짐도, 비라보는 관중도, 이 극의 결말도, 내가 지난 수십 년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생 2막 또는 3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무대는 나의 생의 마지막 공연이다. 그야말로 인생의 피날레에 걸맞은 그런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선대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십 년이 될 수도 있는 긴 은퇴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은퇴 후 삶이 이제껏 살아왔던 인생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엉뚱하게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야 한다. 20년의 세월을 의미 없이 보낸다면, 젊은 60대를 허송세월 했다고 탄식하는 80대의 노년이 될 수도 있다.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은퇴의 기간이다. 짧지 않은 이 시간을, 어떤 무대로, 어떤 연출로 꾸며낼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상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