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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비행기 타기

폐소공포증 전조증상 극복하기

by 김정룡

비행기 안은 좀 무섭다


작은 의자에 몸을 쑤셔 넣으니

초등학교 시절 옷장 안에 쪼그려 앉아

숨바꼭질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인생의 출발점이

어미 배 속 작은 공간이어서 일까?

좁은 옷장 안은 묘한 안락감을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나이를 먹어서일까?

비행기 객실 안이 답답하다


갑자기 공간 안에 산소가 없어져

질식해 죽어버릴 거 같은

공포감이 몰려온다


할 수없이 잠시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옷장 안에 숨어

동화 속 작은 집 같이 느꼈던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잠시 후, 거대한 기계의 굉음이 들리고

분사되는 제트 엔진의 괴력이

내 몸을 사정없이 밀어 올린다


눈을 뜨니 창 밖 날개와

작아지는 건물들이 보이고

닫힌 공간의 답답함을 잠시 잊는다


그 사이 잦은 출장으로

기압차에 의한 귀 막힘도

불규칙한 기류에 의한 기체 요동도

익숙하고 놀라지 않는데


동그랗고 기다랗게 생긴

비행기의 공간은

왜 점점 불편해지는 걸까?


눈을 다시 감는다


"그래, 나는 비행기와 함께 날고 있어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그리고, "비행기 타는 건 신나는 거야..

무서운 게 아니야!"


잠깐의 여유를 찾고 나니

더위가 느껴진다

천장 에어컨을 찾아 틀어본다


"오늘은 날씨가 덥네..

다행히 에어컨은 잘 나오네..

음료수는 언제 줄거나?"


주위를 둘러보고

음료수를 들고 있는 스튜어디스의 눈치를 살핀다

무엇을 마실까 미리 고민한다


"그래, 아직까지는 비행기 탈 수 있어!"




무안공항에서 비행기 참사가 있고 나서, 그동안 안전하다고만 여겼던 비행기 타기가 무서워졌다. 가족의 일원을 한 순간에 잃은 유족들에게 다시 한번 조의를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까웠던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을 보고 있으면,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목숨을 거두어가는 수많은 우연한 일들이 언제 어디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시대에 살다 보니, 이제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것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비행기를 타면서 추락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첫 번째라면, 폐소공포증에 대한 두려움이 두 번째이다. 이게 나이를 먹으면 생기는 병인지, 내가 뭐가 잘 못되어서 그러는 건지 의학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히 나는 작은 공간, 아늑한 공간, 밖이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좋아했었다. 작은 텐트 공간도 좋아했고, 작은 차의 실내공간도, 운전석 앞 창문이 좁아 답답해 보이는 것도 좋아했다. 나를 외부와 분리시켜 주는 좁은 공간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모든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좁은 공간 안에 있으면 스멀스멀 공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공황장애의 전조 증상인가?


아직은 비행기 탈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외국 나가 있는 아들도 방문해야 하고, 은퇴 후 해외여행도 몇 번 나가주어야 한다. 그 사이 출장 다니며, 장시간 좁은 이코노미 석에 앉아있어도, 몸을 구겨서 잠도 잘 자고, 시차적응도 잘해왔다. 비행기를 무서워한 적이 없다.


이제 와서, 폐소공포증 같은 엉뚱한 것에 발목 잡히면에 안 된다. 비행기와 친해져야 한다. 비행기를 타면 좁은 공간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하늘을 날아 넓은 곳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나는 공간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니다. 나는 벽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에 있다. 비행기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내가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는 집 공간이다." 나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이제는 그래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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