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으로 통제하는 법 VS 기준을 세우고 실행하는 법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오늘은 문득 그 부겐베리아 할머니는 손주에게 일종의 '협박'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살 자해 충동으로 함께 개방병동에서 지내고 있는 큰딸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제주도 버스 안에서 만난 할머니의 얘기를 들은 딸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자기가 볼 때는 어린 손주에게 할머니가 너를 버릴 수도 있다는 아주 큰 두려움을 주는 훈육방식이며 이런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계속 두려움 속에서 클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두려움 가운데 생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부모의 훈육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와 남편도 과도한 애정을 아이에게 쏟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두려움을 주었던 훈육방식이었기에 예민한 큰아이가 지금의 정서장애를 겪는 것 같기도 하다. 작은딸도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큰아이와는 성향이 완전히 달랐기에 작은딸은 그냥 넘기며 자기 식대로 자라왔을 가능성이 크다.
난 솔직히 친절하면서 기준을 제시하는 단호한 엄마는 아니었다. 에너지가 있을 때는 어린 시절의 결핍감에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과도히 반응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약한 엄마였고 두려움과 칭찬을 번갈아 주면서 아이들을 강하게 통제하려 하였던 엄마였다. 개방병동에서 아이와 함께 다시 생활하다 보니 교수님과 간호사님들로부터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새롭게 배우게 된 부분들이 많다. 그들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 주지만 안 되는 것은 상냥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병동에서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조율하여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해 주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스스로 정맥주사 형태의 진정제를 맞고 싶어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자해 충동이 들어 스스로 빼버리면 아이가 아무리 요구해도 이틀은 다시 주지 않는다는 규칙을 아이와 정했고 그대로 실행하니 아이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가 너무 위험하여 보호병동에도 갈 수 없고 부모의 상주하에 일인실에 있다 보니 비용이 많이 나와 가정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음을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 병원에 부담 없이 있으려면 교수님께 다인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에 물었다. 교수님은 일주일 동안 강박 없이 잘 지내면 다인실로 즉시 옮겨 주겠다고 약속했고 아이는 그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병실 생활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신 진정제는 정맥주사 형태의 아티반을 두 번, 그냥 주사 형태의 아티반을 4번까지 맞을 수는 있게 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 연거푸 3일을 강박 없이 잘 지냈다. 충동이 올라오기 전에 진정제를 맞는 방법을 써서 어떻게든 잘 넘겼다.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일이 생겨 그 다음다음 날부터 다시 일주일이 스타트되긴 했지만 아이는 다시 담담히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5일째 되던 날 불쑥 강한 충동이 올라와 위험했지만 진정제를 맞고 말로 잘 설득이 되어 강박은 면했다. 오늘만 무사히 보내면 7일을 강박 없이 지냈기에 교수님은 내일 다인실로 옮겨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인실에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면 바로 다시 일인실로 가게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아무리 졸라도 상냥하지만 병원의 규칙에 따라 아이를 대하니 아이가 때로 성질이 나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발작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아이도 병원의 룰에 따라 잘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아이를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도 조금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아이가 불만을 터트리고 분노로 울어도 끌려가지 않으면서 어떤 상황인지를 항상 자세히 설명해서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충동과 강박이 올라오는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를 무수히 말하고 제시하는 열정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아이는 교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랐다. 교수님의 경계선은 무척이나 넓고 자유로웠으나 그 경계선은 분명하고 확실했다. 아이는 그 경계선 안에서는 어떤 요구를 하든 받아들여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니 교수님과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하였고 오전에 병실에서 교수님을 보지 못하면 외래까지 찾아가서 기다렸다가 교수님의 얼굴을 보고 올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