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진심

지금 설레는 것

by 아름다운 관찰자

아이가 개방병동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을 때는 설연휴기간이었다. 남편은 지친 나를 대신해서 발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난동을 부리는 아이 옆을 24시간 지켰다. 그 이후에는 낮에는 내가 있고 밤에는 남편이 병원에 서로 교대해서 아이 옆을 지키기로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 옆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남편은 적극적으로 나의 짐을 나누어지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평일에는 병원에서 바로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병원으로 왔다. 회사일도 해야 하는 남편에게 강행군이 시작되었지만 난 밤까지 아이를 감당할 자신이 도무지 없었기에 남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설연휴가 지나고 개방병동에서 지낸 첫 일주일 동안은 나는 아이 옆에서 별말 없이 조용히 지내면서 틈틈이 누워만 있었다. 한번 바닥이 난 에너지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이성을 잃어 엄마, 아빠한바탕 한 후 다시 병원에 입원한 상황임을 았았기 때문인지 보호자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말을 거의 걸지 않고 검정고시 준비만 열심히 했다. 지쳐 있을 때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엄마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아이였기에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새로 처방한 ADHD약이 효과가 좋아서 다행히 아이는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력 있게 공부만 하면서 보냈다. 밤에도 발작하는 횟수가 줄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진정으로 꿈꾸는 것이 지금은 무엇일까? 나는 냉정히 되짚어 보았다. 아이는 클라리넷을 다시 시작하면서 목표를 새롭게 정했는데 아기 고양이와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병원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그동안 계속 거의 날마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주의를 병동이 아닌 고양이와 클라리넷으로 돌리려 했지만 아이는 자기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에 갈 수도 있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네가 진정으로 설레는 것은 병동 생활이지 않니?"라고 직접적으로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아직 환자이기에 모두가 자기에게 친절히 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병원에서 언제까지나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난 아기 고양이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사주었으니 끝까지 일상생활을 해내야 한다고 아이에게 고집을 부리고 있었고 어떻게든 아이가 집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이 옆에서 아이의 기분을 달래어 주다 보니 지쳐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아이와 함께 교수님을 찾아가 교수님과 면담을 하였다. "교수님, 아이가 진정으로 설레는 것은 병원 생활입니다. 아이가 원할 때까지 계속해서 병원에서 생활하게 해 줄 수 있나요? 아이는 자기가 건강해지면 병원에서 나가야 할까 봐 그걸 더 걱정하고 있고 좋아지는 것을 겁내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잠시 말을 못 하고 아이의 얼굴을 보시더니 진짜 그걸 원하냐고 물으셨다.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교수님은 네가 난동을 부리지 않고 잘 생활하면 원하는 만큼 병원에서 지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단 부모의 상주하에 개방병동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처럼 일인실에 계속 있는 것은 가정경제에 부담이 많이 되니 다인실로 옮겨 줄 수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교수님은 그것도 아이가 일주일 연속으로 강박하지 않고 잘 지내면 다인실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나중에 아이는 자기가 좋아지면 엄마, 아빠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자기만 보호병동에서 지내게 해 줄 수 있는지도 교수님께 물어보았지만 그것은 인력이 부족하여 안된다고 교수님은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TV에서 불치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어린 환자들이 나오는 프로와 오은영 박사가 나와 솔루션을 제시해 주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 보았었다. 환자가 되어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세상사는 것이 힘들었던 아이의 마음은 그 정도로 지쳐 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된 아이의 간절한 소원은 발레리나처럼 마른 몸이었다. 체형교정을 해주고 싶어 초등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발레를 보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아이는 발레에 진심이었다. 발레를 하기엔 체형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아이는 가장 마른 몸이 되어 발레의 세계에서 인정받길 원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음식을 거의 먹질 않아 아이는 거식증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 아이를 아빠가 무섭게 혼내서 아이는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었지만 그런 마음의 동경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섭식장애를 겪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가 죽지는 못하게 하니 심각한 저체중이 되어 환자로 병원에서 사는 것 그것이 아이가 지금 원하는 생활이었다. 나는 이런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집이 아닌 안전한 병원에서 분노와 충동을 약으로 조절하면서 전화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상담도 받고 집중력 있게 검정고시대비 공부를 하면서 보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일인실에서 아빠, 엄마와 밀착하여 같이 생활하다 보면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아빠와 엄마에게 쌓였던 마음을 푸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