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약속대로 아이가 강박을 하지 않고 연속으로 잘 지낸 일주일이 되기에 나와 아이는 쾌재를 부르며 다인실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아이는 갑자기 퇴원을 해야겠다고 했다. 그동안 일인실에서 낮에는 엄마와 밤에는 아빠와 밀착해서 생활해 보니 아빠의 사랑이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시는 손길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는 자기를 순수하게 사랑해서 돌보지만 간호사들은 자기들의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전에 보호병동에서 생활할 때는 부모와 떨어져 있다 보니 간호사들의 존재가 크게 다가왔지만 개방병동에서 부모와 함께 있다 보니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병동생활에 설레어하던 아이의 환상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자해를 하려고 해도 자기는 다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해를 하려고 할 때마다 그 즉시 구해주는 손길이 항상 있었고 화장실에서 주사 바늘로 자기 팔을 찔러보았지만 피도 나지 않고 괜히 자기가 헛수고만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아이와 그동안 개방병동에서 밀착하며 지낸 결실이기도 했다. 아이는 어느 날 부모에게서 받은 가장 상처가 되었던 일을 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처음으로 얻어 아빠, 엄마 각자에게 긴 작문을 적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부모의 사과를 다시 정식으로 받았고 전화로 상담받으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다. 부모에게서 상처받았던 것들에 매여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져 아빠와 좋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통합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서 아이의 자살 생각이 없어졌다. 개방병동에서 아빠도 아이와 날마다 지내면서 내가 비치해 둔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달라진 모습을 우리에게 보였던 점도 정말 크게 작용했다. 아마 아이는 아빠가 책을 읽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개방병동에서 아빠랑 지내다 보면 더 많이 부대껴 아이가 난동을 자주 부리게 되는 면이 있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이와 아빠가 병동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야 아이가 아빠에 대해서도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전에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퇴원해 집에 와서 지내보더니 이번에는 자기 몸무게에 대한 불안감이 심하게 밀려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자살사고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동안 깊이 뿌리내려 있던 섭식장애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아이를 괴롭혔다. 몸무게 때문에 먹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너무나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토했다. 그렇게 먹고 불안해서 토하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토요일밤 응급실을 찾아가 진정제를 맞고 마침 당직을 서고 계셨던 담당 교수님께 다시 입원을 요청하였다. 교수님은 그 정도의 불안이라면 입원보다는 힘들 때마다 외래와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을 권하였지만 아이는 자신의 섭식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 다시 입원해야겠다고 했고 교수님께 도움을 구했다. 교수님은 전에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일단 다인실로 입원시켜 주셨지만 아이가 충동이 조절이 안될 때를 대비해 옆방 일인실을 당분간 준비해 놓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이는 다인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하여 자기 몸무게를 재더니 집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자 바로 다시 퇴원해야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안 먹은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눈에 띄게 힘이 없어 보였기에 담당교수님과 우리 부부는 만약을 위해 병원에 남아있길 권했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그래서 교수님은 하루이틀이 멀다하고 계속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아이에게 퇴원을 하면 앞으로 '일주일'은 입원은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으셨다. 만약 입원해야 될 상황이 생기면 다른 병원을 가야 하고 자기한테는 일주일이 지나 외래에 왔을 때에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치료 목적'으로 선을 그으셨다. 아이는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힘들어 응급실을 가서 진정제를 맞고 입원을 요청하였지만 난동을 부려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체념하고 일주일을 다 채워 약속한 날짜에 외래에서 교수님을 만나 다시 입원을 하였다. 일주일을 잘 버티고 온 아이에게 교수님은 굳이 입원을 하지 않아도 지낼만하면 집에서 지내보라고 다시 권하셨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강경했다. 자신의 섭식장애를 고치지 못하면 클라리넷도 불 수 없다고 섭식장애가 어느 정도 해결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기약이 없이 개방병동에서 아이와 또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 이틀째 되던 날 기대하지 않았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항공정비사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