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호르몬을 차단해 주세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 아이의 분위기가 다소 어두워지면서 강박적 행동이 시작되었다. 그때 아이의 2차 성징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우리 부부는 '성조숙증'이 의심되어 소아전문병원에 찾아가 여성 호르몬 수치와 뼈 나이를 측정하는 검사를 진행했었다. 결과적으로 여성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 나이에 비해 일찍 월경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월경을 하게 되면 성장판이 일찍 닫히기 때문에 키도 예상키보다 작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키를 키우고 싶은 욕심에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주사를 초등 5학년이 될 때까지 월에 한 번씩 맞으러 병원을 다녔었다. 그랬더니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았던 딸의 분위기가 다시 아이다운 발랄함으로 돌아와 나는 한동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아직 사춘기의 아이를 만날 준비가 난 덜 되어 있었고 중학생이 되기 전까진 아이가 또래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지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자퇴 후, 비록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강하였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었다. 클라리넷으로 계원 예고에 합격하고 일반고로 전향할 무렵만 해도 아이는 학교를 잘 다니고 싶은 마음에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한동안 잘 지냈었다. 그런데 일반고로 가서 생리할 무렵이 다가오자 아이는 급격히 우울해지고 눈물을 계속 흘리며 죽고 싶다고 계속 말하고 다녔다. 우리는 다니던 정신과 의원의 약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이 서 대학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고 아이는 스스로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 보호병동에 들어가면 보통 길어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집에 오고 싶어 했고 퇴원해서는 한동안 잘 지내다가 다시 입원하는 생활을 일 년 가까이 반복하게 되었다. 보호병동에서 뒤로 떨어지는 자해 행동으로 허리를 다치고 나서는 보호병동에 못 들어가고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 개방병동으로 아이와 함께 입퇴원을 반복했었다. 그 과정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아이는 약의 도움보다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라도(예를 들어 고양이 입양 같은) 자신의 의지로 다시 잘 살고자 할 때는 잘 살다가 생리 때가 다가오면 우울함과 불안이 심해져 충동이 올라와 발작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나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고졸검정고시를 힘겹게 치르고 다시 개방병동에 같이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담당 교수님께 나의 의견을 강하게 전달하였다. 아이의 정신질환이 여성 호르몬과 연관성이 커 보이니 초등학교 때처럼 여성 호르몬을 차단하는 주사를 처방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사실 작년에 입퇴원을 반복할 때도 건의를 드렸었지만 그때는 나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교수님도 정신과에서 행하는 일반적인 치료방법이 아니라고 거절하셨다. 하지만 그때 교수님도 정신질환과 여성호르몬과의 연관성은 부인하지 않으셨다. 아이의 상담 선생님이 계시는 서울 정신과 의원의 의사 선생님께도 나의 의견을 제시했었는데 가능성을 인정하셨다. 단지, 아무리 치료가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평생을 여성성을 제거하고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아이가 감수해야 하는지 엄마로서 무척 고민이 되었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다시 악화된 만큼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결단이 섰다. 담당 교수님은 산부인과에 협진을 요청하셨고 우리는 산부인과 교수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내가 분노한 날 바로 아이가 발작하여 제지하였던 간호사의 손등이 살짝 긁히고 아이가 강박한 상태에서도 개방병동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계속지르자 교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병원으로의 전출을 요청하셨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치료를 위해선 다른 2차 보호병동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교수님의 판단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치료되지 않고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떠날 때 떠나더라도 산부인과 협진은 꼭 보고 병원을 나갈 수 있게 부탁을 드렸다. 협진을 요청드린 지 삼사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산부인과 교수님을 못 뵈었다고 했다. 교수님은 그 정도의 배려는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다고 하시더니 얼마 안 되어 바로 산부인과 교수님이 나타나셨다. 분명 우리가 산부인과에 직접 가서 알아본 바로는 학회 가셔서 원래 있던 외래도 취소하고 안 계셨던 분이었다. 참, 어이가 없었으나 아이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처방을 부탁드렸다. 월경 전 증후군에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었기에 먼저는 피임약을 권하셨지만 우리는 합당한 피임약을 찾는데 더 이상 시간을 쓸 여력도 없고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니 주사로 처방해 주시길 다시 요청드린 뒤에야 삼 개월짜리 여성호르몬 차단제를 처방해 주셨다.
그날 아이는 한 달 치 아빌리파이 주사도 함께 처방받아 하나는 팔에, 다른 하나는 복부에 각각 주사를 맞고 바로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와서도 밤마다 발작은 계속되었다. 아이가 아직 생리 중이기도 했고 주사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동안은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 잘 지켜보기로 했다. 퇴원할 때 담당 교수님은 아이가 아무리 주사를 맞았어도 바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긴 어려울 거라 하셨고 아이가 위험한 상태이니 당분간 집에 데리고 있기보다는 다른 2차 보호병동이든 서울의 대형병원이든 입원을 권하셨다. 다른 2차 보호병동에는 무서워서 절대 가고 싶지 않았던 아이는 현시국의 의료 사태로 인해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자기의 입원을 쉽게 받아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내보낸 교수님이 무척 원망스럽고 무책임하기까지 여겨진다고 했다. 더구나 교수님의 기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엄마인 나는 또다시 '새옹지마'를 떠올리며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순응하고 있었다. 사실 교수님은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함으로 우리에게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다른 기회의 문을 공식적으로 열어주셨다. 우리는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한편으론 이 일로 인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어떤 선이 숨어있을지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