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s Always the Best Day
불안 불안하게 일상을 살아내던 아이가 어느 날 아침에 식탁에 앉아 있는 나에게 와서 "힘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하는 심정이 이해가 된다"라고 '살아가는 고통'을 호소했다. 몇 주 전부터 병원 생각도 많이 나고 살은 빼고 싶은데 살을 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힘들어서 병원에 가고 싶은데 아기 고양이들을 두고 차마 가지는 못하겠고 날마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딜레마에 빠져 있는 자신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불현듯 화와 짜증이 올라와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는 방으로 확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이가 가버린 자리에 앉아 가만히 식탁 위의 머그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머그잔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Today is Always the Best Day'(오늘은 항상 최고의 날) 종종 마시곤 하는 머그컵에 그런 문구가 있었는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믿음과 함께 기쁨'이 몰려왔다. 마치 내게 천사가 속삭이는 듯했다. '아이의 말과 증상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좋은 일이 있을 거니까 낙심하지 말고 기운을 내라'라고 하는 듯했다. 그날 아이는 거실로 나왔다가 다시 감정이 올라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길 몇 번 반복했으나 나는 잠잠히 마음을 지키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본격적인 사건은 그다음 날 오전에 일어났다. 아이가 집에 있는 것도 힘들고 병원에도 차마 갈 수 없으면 방을 구해줄 테니 혼자 살아보는 것은 어떨지 같이 의논하고 있었고 아이도 받아들이는 듯해서 나는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와서 필요시 약 '아티반'을 요구했다. 올 것이 오고야 만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이는 현관 밖으로 나가 계단에 앉아 있다가 들어왔는데 안 되겠는지 다시 나가려는 아이를 내가 막아섰다. 아이가 그런 나의 모습에 결국 폭발하여 현관에 있던 생수 묶음을 들어 집어던지고 밖으로 밀치고 나가려 했다. 아빠도 와서 대기하고 있었고 아이는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엄마는 무엇으로부터 날 지키려 하는 거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엄마는 모르겠어... 얘기해 줄래?" "그러면 평생 모르고 있어!"라고 화를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돌아오는 월요일, 대학 병원 교수님이 진료가 있는 날 입원하기 위해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이는 "정말 마음 편하게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데 아기 고양이가 너무 마음에 걸려"라고 말하면서 아기 고양이를 붙들고 울었다. 아이는 갈등 가운데 연거푸 다시 물었다. "엄마, 병원에 입원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그리고 아빠한테 가서 한참을 아빠를 끌어안고 아빠와 대화를 하고 왔다. 나는 그사이 씻고 나왔는데 아이가 언제 다시 발작을 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서는 씻을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이에게 "고양이들은 아빠가 잘 돌볼 테니 네가 알아서 해도 된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아이 방에 들어가 침대에 있던 아이 옆에 같이 누웠는데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어"라고 아이가 불쑥 말했다. 자기에게 '신내림' 비슷한 것이 와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혼자 쓴 글들을 읽어주었는데 요지는 '과거에 붙들려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놀랐다. 기적이 일어났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붙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평소에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시간-입원했던 대학 병원에 대한 그리움에 잠겨 있지 않으면 불안하여 미래의 시간-무언가가 되기 위해 성급하게 결정하고 해내려 스트레스를 무척이나 받았다. 그냥 쉬엄쉬엄 찬찬히 자기를 돌아보며 현재에 주어지는 것들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동안 보였다.
아이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난 언제까지나 엄마 옆에 있을 거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따뜻한 포옹이야.. 그리고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나에게 자주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어... 오늘 현관에서도 내가 정말 원했던 건 엄마가 그런 나를 가만히 안아 주는 것이었어... 이제는 병원 생각은 흘려보내고 밥도 적당히 먹으면서 고양이들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 거야" 나와 아이는 서로를 꼭 껴안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다음날 아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축사 예배가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아이는 엄마, 아빠가 교회 가는 것도 싫다고 했었는데 갔다 와도 된다고 괜찮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도와주고 있던 고양이들을 돌보는 일을 모두 도맡아 한 마리 한 마리 마음을 써서 돌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