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27화

글을 맺으며

아이의 하루

by 아름다운 관찰자

지난 3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요 일주일은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아이가 무언가 하려는 부담감을 모두 내려놓고 나니 그저 아가처럼, 고양이들처럼 먹고 자고 쉽니다. 아이도 생전 처음으로 과거와 미래가 주는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루를 그냥 심심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그것이 저는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불안이나 우울, 마음의 고통 없이 온전히 하루를 그냥 심심하게 보내도 괜찮다는 것을 것을 알 때 영혼은 그제야 안심하고 쉴 수 있으며 '존재하는 것' 자체에 집중함으로 그동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쌓아 올린 허울뿐인 이미지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 현재를 살아내는 근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자기에게 다가오는 일, 설렘을 주는 일을 그냥 하나씩 해 봄으로써 자신이 발현되는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처럼 맛보게 되기도 합니다.


나의 지나온 무의식은 아이가 아가일 때를 제외하고 유년기, 초등기, 사춘기까지 충분히 놀면서 지낼 수 있는 특권을 대가나 보상이나 판단 없이 마냥 편하게 주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아이가 원할 때까지 그 특권을 주려 합니다. 사람은 그냥 존재해도 충분하게 처음에는 태어나고 한동안 그렇게 자라지만 세상이 주는 여러 가치관으로 엄마들은 조기 교육의 유혹이나 자존심이나 다른 어떤 것들로 아이들이 그냥 존재함으로 그냥 사랑받는다는 진리를 알기 어렵게 만듭니다. 내 아이가 치료가 안되어 자살 자해 충동으로 인해 평생 정신 병원에서 지내게 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려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아이가 집에서 편히 먹고 자고 쉬고 고양이들을 돌보고, 핸드폰 하고 아빠와 저녁마다 게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 한 끼 정도는 음식을 배달해 먹지만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하나씩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고 아이를 기뻐함으로 모든 일을 바라볼 뿐입니다.


어찌 보면 아이가 특별히 하는 일이 없기에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 만나는 것이 무서워 밖을 나가지도 못하기에 약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와 함께 대학 병원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교수님은 아이가 약을 두 달 가까이 먹지 않았는데도 중간중간 감정의 고비들을 잘 넘기고 그동안 집에서 잘 지낸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척 엄지를 올려 주셨습니다. 대학 병원 간호사와 보호사 선생님들의 친절한 돌봄이 그리워 입원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자기가 지키고 돌보아야 할 더 소중한 아기 고양이들이 생겨 그로 인해 살아가는 것 자체로 좋은 선택을 했다고 하시면서 약을 처방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는 것 외에 힘을 내어 더 설레는 일을 찾는데 약이 도움이 될까 싶어 한번 더 교수님께 말씀드렸으나 교수님은 그것은 약을 먹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찾은 다음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할 때 약을 먹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고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아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꾸 여러 일들은 벌여놓고 끝까지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는 아이에게 "사람들이 여행하는 경비는 아까워하지 않듯이 작심 3일로 끝나더라도 그것도 의미가 있어. 그것에 들어간 비용을 아깝게 생각하지 마. 수없이 했던 작심 3일도 자기를 찾는 과정이고 인생 경험이야."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희미하더래도 반짝이는 작은 설렘들을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에게 맞는 환경과 일을 찾게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는 자신을 향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왔던 걱정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더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아이가 이제야 집에서 편하게 있어도 된다는 것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얼마든지 뒹굴뒹굴 거려도 괜찮았던, 어린 시절 못 주었던 특권과 사랑을 지금이라도 마음껏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고... 평생 아이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아이가 아픔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아이를 데리고 멀리 해외나 제주도까지 가서 살려고 까지 했던 비용을 집에서 아이가 자신으로 그냥 지내면서 살아가는데 쓰는 것도 괜찮다고... 설혹 그것이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다소 답답해 보이는 시간일지라도... 그래서 아이가 끝내 고양이 키우는 일만 하게 되더라도... 오늘도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숨 쉬고 있고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 고맙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