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22》
'세상에 어찌 이런일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면 아직 밑바닥이 아닙니다. 진짜 밑바닥에 다다르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아직도 밑바닥은 한밤입니다. 고통스럽겠지만 새벽을 지나야 아침이 옵니다.
밑바닥을 찍고나서야 밑바닥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죽어봐야 저승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늘 죽음은 산 사람만이 이야기 합니다. 죽은 사자는 말이 없습니다. 산 개가 늘 말합니다. 죽음을. 진짜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밑바닥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전심전력하기에 말 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나고 한참 뒤에 '그게 바닥이었구나' 나서야 알게 됩니다.
이 아침에 SNS는 우체부가 됩니다. 무수한 사연들이 우체통으로 날아 듭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했다고, 힘내라고. 다행히 좋은 글들이 크루즈 미사일로 꽂힙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입니다.
✔️ 진정한 친구는 나의 곁을 지켜주고
✔️ 멘토와 롤모델은 나를 더 성장하게 하며
✔️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세요.'
완전 근사한 글입니다. 아침에 페이스북 우체부가 배달한 따끈한 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간다'는 말을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 부모님에게 늘 듣습니다. 나도 당신도 늘 들었던 말입니다.
일년에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은 오천 명입니다. 2천년 전에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의 숫자만큼만 입학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서울대 출신이라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세요. 다행히 나는 서울대 졸업생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아주 극소수만 기분 나쁠 것입니다. 대다수는 In 서울도 힘든데, 서울대라니!
내가 서울대학생이 아니라면 서울대 다니는 친구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서울대 졸업생이 아니라면 서울대 칭구는 꿈도 꾸지 마십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성산대교 난간을 잡아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것입니다. 무거운 돌과 가벼운 깃털이 무게와 상관없이 9.8m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아침이 옵니다. 날개는 새들의 것입니다. 아파트 난간을 뛰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추락해 보면 압니다. 인간은 몸이 날개라는 것을. 온 몸으로 지구의 중력을 감수해야 합니다. 떨어지는 높이만큼 가속도가 붙습니다.
한강에 뛰어도 표면장력 때문에 콘크리트 바닥에 뛰어내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뛰어던 사람은 '물이라서 고통이 덜하겠지'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아파트 30층에서 떨어지는 수박일 뿐입니다.
달항아리 아트뮤즈라는 회사를 24년 8월 8일에 만들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가장 뼈 때리는 용어가 '데스 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입니다. 월급쟁이로 그 추상화를 말로만 듣다가 사업자가 되면서 정물화로 만났습니다. 데스 밸리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습니다.
'남북길이는 225㎞이며 동서길이는 8~24㎞에 달한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이며, 서반구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으로 해수면보다 82m 낮은 지역도 있다.
처음에는 개척민들이 이주하는 데 장애물('죽음의 계곡'이란 뜻을 가진 이름도 여기서 유래)이었으나, 후에는 붕사 개발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극단적인 자연환경으로 인해 관광객들과 과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33년 국립기념지로 지정되었다. 서쪽은 패너민트 산맥, 동쪽은 애머고사 산맥을 이루는 블랙·퓨너럴·그레이프바인 산과 경계를 이룬다. 지질학상으로는 그레이트베이슨의 남서쪽에 해당하며 자연지리학상으로는 미국 서부의 일부분이다.'
설명은 여전히 추상화입니다. '남북길이는 225㎞이며 동서길이는 8~24㎞에 달한다.' 나는 이 한줄에 꽂힙니다. 저 먼 길을 어떻게 지나지? 정물화, 말로만 들어도 섬뜩한 '데스 밸리', 죽음의 계곡입니다. 유동성이 막히면 죽음입니다. 사업자한테는 지옥보다 더 무서운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이곳을, 저 먼 225km의 길을 어떻게 지나지? 말은 밋밋한데 그게 내가 꼭 걸어야 하는 길이 되면 막막합니다. 눈앞이 캄캄한 순간 노예로 애굽에 팔려간 어린 요셉이 됩니다. 데스 밸리를 이기지 못한 사람은 한강대교로 갑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데스 밸리를 지금 막 건넌 달항아리입니다. 지금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새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달항아리입니다. 《선입술 제살붙인 팔각달항아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달항아리 보다 깨지고 터진 이 달항아리를 보고 나는 위로를 받습니다.
《제살 붙인 달항아리》
세상에 상처 없는 이가 어디 있나,
깨져 터져도 제살 붙이고 사는 거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오른손 칼에 왼손을 베이니
장난 돌에 개구리는 생사가 갈린다
얕은 외상보다 깊은 내상에 믿었던
시멘트 바닥도 갈라져 위태롭다
세상에 상처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
제살 아문 상처는 철인의 훈장이다
흉터만 그 고통의 시간을 기억한다
별빛에 베인 강물은 소리없이 흐르고
붕대 싸맨 고흐는 침묵속에 울고 있다
깨지고 터져도 제살 붙이고 사는 거,
슬프게도 그게 달항아리 운명이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새에게 새벽은 아침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겨울을 미워할 이유는 천만가지가 넘습니다. 그런데 사랑할 이유는 단 하나를 찾자면 '봄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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