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하나 싶어 예전에 써 놓은 노래 가사를 뒤적이다가, 언젠가 써 놓은 노래 가사 하나를 발견했다.
<들린다면>
내 노래 좀 들어줄래요 당신을 향한 나의 이 노래
내 눈에는 그대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대는 어떠한가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내 맘 속엔 온통 그대 생각뿐
남의 시선 따윈 내겐 중요치 않은데 그대는 어떠한가요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내 머릿속엔 그대 생각 밖에 없는데
만날 수만 있다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텐데
그대는 들리나요 나의 외로운 이 외침이 들린다면 느껴진다면 한 번이라도
그대의 마음 보여줄래요 그대의 마음도 나와 같단 걸 그대의 마음도 나와 같단 걸
이 노래는 단순히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을 담았던 곡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가사에 나오는 '그대'라는 대상은 단지 이성뿐만이 아니라, 내가 항상 붙잡고 싶은 '성공'과 같은 이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내 머릿속은 성공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게도 답을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외침에도 '그대'라는 작자는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정작 나와는 더 멀어지는 듯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욕망이 너무 컸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릇은 준비되지 않았는데, 없는 능력에 비해 욕심만 컸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은 아직 1억을 벌기도 힘든 사람인데, 항상 100억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여담이긴 하지만, 어제 아는 동생의 아들이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자, 자신보다 우월한 친구들의 능력에 그 아들은 위기감을 느꼈고,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자신의 머리는 그 친구들보다는 좋지 않다는 생각에...
그래서 그 아들은 들어가기조차 힘든 과학고등학교에서도 1학년, 2학년 1학기 전부 수석을 하며 의대 수시 전형에까지 합격하게 됐단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는 이미 깨달았다.
자신의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결국 그의 삶을 빛나게 했다.
인생의 진리를 나보다 먼저 깨달은 그 학생이 대견하고도 부럽게 느껴진다. 곧 의사의 엄마가 될 수도 있는 그 아는 동생은,
하... 나... 도... 안 부럽다.
진... 짜... 다... (왜 어금니에 힘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항상 가슴에 품고 살던 말이 있다.
'대기만성'
어린 시절부터 왠지 모르게 이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정말 왜 인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제일 처음 배운 사자성어가 '대기만성'이었나?)
뭔가를 배울 때에는 항상 남들보다는 많이 늦었다. 학원을 다녀도 남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배우고, 나보다 훨씬 진도를 앞서 가는데, 나는 항상 뒤처졌다. 하지만, 학교 수업에 꼭 필요한 것이라, 안 하면 안 되었기에 언젠가는 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니 내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보일 것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매달려 보았다.
'흥.칫. 큰 그릇은 원래 늦게 만들어지는 법이거든!'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도 이제 내년이면 억지로 만 나이라고 우겨도 50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만 49세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늦었다 생각할 수 있는 나이지만, 나는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은 조금 늦게 만들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손 놓고 있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해 보면서 나의 능력을 점점 키워 보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능력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꾸는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꿈이 헛된 욕망 만은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