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융합의 힘
폴리매스에 대한 찬사와 비평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어떤 시대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지지하고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지만, 폴리매스들의 다양한 학문 연구를 수박 겉핥기식의 가벼운 지식 쌓기로 폄하하는 시대도 있었다. 확실히 폴리매스들의 많은 영역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시작한 연구를 끝맺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본인이 벌인 많은 작업들을 미처 끝마치지 못하거나 예상된 기간보다 훨씬 길어져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것을 보면 폴리매스에 대한 비평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폴리매스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여러 연구를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미 AI가 우리의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를 폴리매스가 되도록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전문가가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축적해야 하는 지식과 정보를 이제 몇 초 안에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에 평생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여러 분야의 일이 가능한 폴리매스에 비해 앞으로는 그만큼 도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번외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고 있는데 한 가지 전문 분야에 몰두하면서 그 긴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물론 특별한 전문가들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AI와 인간 수명 연장은 결국 우리가 폴리매스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많은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한다고 해서 모두를 폴리매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폴리매스를 그들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은 바로 '융합의 힘'이다. 다양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폴리매스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창의적 융합 능력을 갖춘 폴리매스로 키우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단연 독서를 첫 번째로 추천한다. 독서는 어린이든 성인에게든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주지만, 특히 어린이들의 창의적 융합 능력을 키우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독서만큼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이들은 독서를 할 때 경제, 과학, 철학, 인문, 예술을 구분하여 흡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든 모든 분야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내용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빨아들인다. 예를 들어 여섯 살 아이가 선사시대가 배경인 공룡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 혹은 교사가 책을 읽어 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룡 그림이 가장 먼저 아이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멋진 공룡 그림을 본 아이는 그중 티라노가 가장 힘이 세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티라노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려고 쫓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티라노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무서운 동물임을 알게 된다. 먹이 사슬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쫓기는 작은 동물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 동물이 숨을 곳이 있는지 배경 그림을 보게 된다. 배경 그림에는 티라노가 살았던 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공룡 혹은 동물들이 보이고, 식물도 보인다. 아이는 그럼 공룡이 사람도 잡아먹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아이가 공룡 시대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물으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는 책을 하나 더 읽어보자고 제안하면 된다.
책 내용의 후반에 '너무나 추운 겨울이 왔어요. 공룡들은 너무 추워요. 너무 추워서 먹을 것이 없지요'라는 내용이 나오면 우리가 지내는 겨울과 티라노가 살던 시절의 겨울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공룡책에는 빙하시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빙하시대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는 책을 찾아서 읽게 도와주면 자연스럽게 확장 독서를 하게 되고, 확장 동서를 통해 과학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된다. 또 너무나 멋진 티라노와 공룡들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성, 상상력이 증진되고 또 다른 독서로 이어져서 축적된 지식의 파편이 연결되며 융합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신문에 실린 '읽기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 메이엔 울프 박사의 인터뷰 기사에서 "읽는 동안 뇌는 재창조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독서가 아이들의 사고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독서를 하는 동안 뇌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하고 정교한 회로를 만들어 내며, 이미 알고 있던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연계하거나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내용을 추론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연계'와 '추론'이 바로 폴리매스들의 가장 큰 특징인 창의적 융합인 것이다. 기사는 또 디지털 독서가 아닌 종이책 독서를 강조하면서, 2023년 발표된 연구를 인용하여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디지털 독서는 독해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종이책 독서가 디지털 독서보다 독해력을 6~8배 더 효과적으로 높인다고 강조했는데, 종이책 읽기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미국 LA 다운타운에 'The Last Book Store'라는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힙한 관광지라고 일행이 추천을 했는데, 낡은 책방을 연상시키는 앤틱한 분위기를 잘 연출해 놓은 곳이었다. 동네 서점 한 곳이 LA라는 큰 도시의 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된 것을 보면서 작은 동네 서점들이 사라져 가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편하게 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아늑한 동네 서점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독서를 통해 머릿속에 자신만의 상상 그림을 펼칠 수 있는 아이들이야 말로 창의적 융합인재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이들이다. 여기서 우리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분명하다. 당연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종이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기계가 넘치는 세상에서 기계를 접하기 전에 종이책을 최대한 많이 접하게 해 주자. 기계가 있어도 책을 먼저 읽을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paper book friendly'한 환경을 만들어 주자. 그것이 창의적 융합의 힘을 지닌 폴리매스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커버 이미지는 AI를 이용하여 생성하였다. ChatGPT 4.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