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별곡(2)

by 최원돈

강촌별곡-2

최원돈



강촌일기 -2025년 05월 16일


점심 모임이 있는 날이다. 봄비가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다. 모임이 끝나면 강촌으로 갈 텐데, 굳이 이 비를 맞으며 나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여보, 모임 끝나고 강촌에 가야 하는데 비도 오고…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어때요?”

“그럽시다. 그게 좋겠어요.”

우리는 차를 타고 남산 길을 나섰다. 이 길은 아내가 유독 좋아하는 길이다. 지난주에도 '행복한 집' 식구들과 함께 이 길을 달리며 벚꽃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때도 비가 왔지만, 오히려 빗속의 벚꽃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오늘은 벚꽃은 다 지고 진분홍 철쭉이 산을 물들이고 있다. 소월의 시비는 봄비에 젖어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보, 저 소월 시비를 보니 생각나는 거 없어요?”

“왜 없겠어요. 우리 처음 만나 사진 찍었던 곳이잖아요.”


점심 모임 장소는 송옥국수 인근 새로 지은 건물 안의 호텔 뷔페였다. 고등학교 동기들 6명이 동부인해 모였다. 오래된 친구들답게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아 음식도 나누고, 추억도 나누며 웃음이 오갔다. 메밀소바의 맛도 송옥국수 못지않게 깊었다.


빗속을 달리며 강촌으로 향했다. 톨게이트까진 내가 운전했다. 그 뒤는 아내가 핸들을 잡았다. 한숨 자고 눈을 떠보니, 아직도 졸음쉼터에 머물고 있었다.

“차가 많이 막혔어요.”

“당신 덕에 이렇게 편하게 낮잠도 자네요.”


지난달, 나는 아내 속을 썩여 강촌에서 홀로 보냈다. 아내는 나의 성정을 잘 알면서도, 화가 나면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쏟아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강촌 집으로 도망치듯 내려와 혼자 속을 끓이며 ‘강촌별곡’을 썼다.

그러다 나는 북경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내는 말없이 내 짐을 챙겨주었고, 나도 말없이 집을 나섰다. 여행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루를 남기고 겨우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내는 “언제 와요? 같이 저녁이나 먹어요”라며 답했다.

나는 늦을 거라며 김치찌개나 끓여 달라고 했다.

자정 무렵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정성껏 끓여놓은 김치찌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 화해를 했다.


강촌 집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우리는 숯가마 가방을 챙겨 가마터로 향했다. 어제 마지막 숯을 꺼낸 뒤였다. 아내는 꽃탕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나는 고온의 가마 안에서 자다 깨다 반복했다. 소낙비는 무섭게 퍼부었고, 숯가마의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천둥 같았다. 이내 마당은 비에 홍건희 젖었다.


저녁엔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 주었다. 봄비 탓에 푸성귀는 뜯지 못했지만, 묵은 김치가 함께해 오히려 더 맛있었다. 소맥 한 잔에 온몸이 짜릿하게 풀렸다. 라면 하나를 끓여 밥을 말아먹고 나니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행복이 별건가요. 이런 게 바로 행복이죠.”


밤이 깊어갈 무렵, 큰딸이 손녀 신원이를 데리고 도착했다.

“우리 신원이 대학 생활에 지장 생기는 거 아냐?”

“괜찮아요. 할머니 생신인데 당연히 와야죠.”

잠시 후엔 작은 딸네도 도착했다. 다혜는 멀미가 났는지 바닥에 벌렁 드러눕고, 정서방은 보따리를 잔뜩 들고 들어섰다. 시영이는 엄마 품에 안긴 채 들어오자마자 카드놀이부터 꺼내 든다.

“시영아, 여기가 어디야?”

“강촌, 강촌!”


내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행복한 집’ 식구들을 다 불러 모았다. 페인트 칠도하고, 생일도 함께 하자며 말이다. 아들네는 내일 아침에 온다고 했다.


강촌별곡이 시작된다.


강촌일기 –2025년 5월 17일


아침 일찍, 구름 방에 군불부터 지폈다. 오늘부터 ‘행복한 집’ 식구들이 모두 모이기에, 따스한 공간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아내는 부추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조심스레 자르고 있다. 군불 땐 구름 방은 아늑해 들락거리며 낮잠도 자고, 잠시 앉아 쉬기도 좋은 곳이 된다. 오랜만에 불을 지폈기에, 그동안 모아둔 삭정이부터 아낌없이 넣었다. 데크 아래 썩어 주저앉은 나무를 갈아줄 새 나무도 골라 두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아들네가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막혔다고 한다. 뒷마당 잔디밭 위에 천막부터 쳤다. 이른 여름처럼 풀냄새가 짙었다.

온 식구가 아침 준비로 분주하다. 둘째 사위 정서방이 택배로 새우와 꽃게를 보내왔다. 그는 캠핑용 가스레인지 위에 꽃게를 찌기 시작했다. 야외용 식탁에 둘러앉아 모두 함께 꽃게를 맛보았다. 살이 꽉 찬 붉은 꽃게의 풍미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서산에서 공사하는 분이 배도 몰며 잡아온 꽃게래요.”

“정말 신선하네. 맛도 깊고 달다.”

이어 새우도 찌자, 향긋한 바다 냄새가 더해졌다.

“지난봄엔 대하가 잡히질 않아 못 먹었는데,

정서방 덕분에 꽃게에 새우까지 맛보게 됐네.”

“난 대하보다 이게 더 맛이 있네.”


단짝 서혜와 소은이는 잔디 마당으로 뛰쳐나와 신이 났다. 막내 시영이까지 합세해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잠시 후, 시영이가 넘어져 옷을 버렸다고 찡그리며 엄마를 부른다.

아들은 데크의 썩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로 바꿔 넣었다. 내일 페인트칠을 위해 미리 바꾸어 놓는다. 대문 앞 명자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우체통도 바깥으로 옮겨 놓았다. 빨간 대문이 다시 살아났다.


저녁엔 아내의 생일을 맞아 소양강 아래 ‘큰집 닭갈비’ 집으로 외식을 나갔다. 철판 위에서 직원이 닭갈비를 정성껏 구워주었다. 우리 부부는 신원이, 다혜와 마주 앉아 닭갈비를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철판 볶음밥에 치즈까지 얹어 마무리하니 그야말로 별미였다. 시원한 막국수까지 곁들여 금상첨화였다. 아내는 술은 삼가잔다.

저녁 식사 후, 뒷마당에서 놀이 한마당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손을 맞잡고 “둥글게 둥글게”를 부르며 신나게 돌고 또 돌았다. 봄비에 바람이 섞여 불어왔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 부부도 손주들과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함께 돌았다. 시영이는 몇 번이고 “또 해요!”를 외치며 춤을 추었다.


강촌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생일 케이크 파티를 열었다.

“할머니 생일 축하해요!”

손자손녀가 환히 웃으며 큰 초 일곱 개와 작은 초 두 개를 케이크 위에 꽂았다. 모두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생일 축하합니다.”

시영이는 신이 나 두 번이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케이크를 나눠 먹고, 자연스럽게 맥주 파티가 이어졌다. 강촌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구름 방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아내가 조용히 들어왔다.

“여보, 밤하늘에 별이 떴어요.”

잠결에 일어나 밖으로 나서니, 하현달이 기울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반짝인다.

‘여보, 그동안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 밤, 별을 헤며 마음으로 속삭인다.


저 멀리서 소쩍새 소리가 들려온다.


강촌일기 –2025년 5월 18일


밤새 구름 방에서 단잠을 자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다. 해가 뜰 때까지 깊은 잠에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봄비가 내렸건만, 아침이 되자 하늘은 말갛게 개었다. 뒷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마당으로 나가 오늘의 일을 하나하나 챙긴다. 데크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꺼내 천막 위에 가지런히 펼쳐 놓는다. 아들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이른 아침부터 나왔다. 현관문은 번호 키와 손잡이만 떼어낸 채, 벽에 붙은 우체통을 떼려던 찰나였다.

“아부지! 우체통 안에 새알이 가득해요.”

“그래? 조심해서 떼어보렴.”

잠시 후, 곤줄박이 한 마리가 후다닥 날아올라 소나무 가지 위로 앉는다. 우체통을 그 가지 위에 올려주자, 마치 제 집을 찾은 듯 드나든다.


붉은 대문 세 짝도 떼어내 벤치 앞에 세워두었다. 격자 대문이라 페인트칠을 하자면 골고루, 정성껏 칠해야 한다.

아들과 며느리는 데크 페인트칠을 맡았다. 며느리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왔고, 커다란 데크의 기둥과 바닥을 꼼꼼히 여러 차례 덧칠해야 했다. 스테인 페인트를 붓에 담아 데크에 천천히 칠해 나간다.

정서방은 현관문을 맡았다. 곰팡이가 슨 흰색 문을 중후한 네이비 색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문의 테두리에 종이테이프를 정성스레 붙이며 칠해 나가는 솜씨는, 그가 건축소장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큰딸은 아내와 같은 모자를 쓰고 나왔다. 아내는 중간중간 식사를 챙기며 일하는 가족들을 둘러본다. 바쁜 와중에도 다들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틈틈이 아침을 나눠 먹는다.

큰딸은 대문 칠을 시작했다. 혼자 하기엔 벅차 작은 딸과 큰 손주 신원이가 번갈아 돕는다. 격자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나는 대문의 기둥과 우체통을 맡았다. 명자나무 가지를 쳐내고, 나무 받침대를 받쳐 기둥까지 겨우 손이 닿는다.

아내는 데크 위의 잡동사니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검정 쓰레기봉투에 담아 바깥으로 내어 놓았다. 그중엔 버리기 아까운 것들도 있었기에, 몰래 몇 개는 다시 데크 아래로 가져다 놓았다. 모두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한참 작업이 이어지던 중, 아내가 새참을 들고 나왔다. 부추전과 삶은 옥수수,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씩을 들이켜니 온몸이 짜릿하다.

작은 딸도 시영이를 데리고 나왔다. 시영이는 서혜랑 소은이와 함께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에 열중한다. 혹여 넘어질까, 큰딸이 뒤 따라다닌다. 작은 딸은 대문 작업을 이어받았고, 신원이는 쪼그려 앉아 정성껏 칠을 한다.

올해 대문 색은 은은한 핑크이다.

“우리 신원이 손이 닿으니 대문 색이 더 곱구나.”

“할아버지, 저도 이제 제법 일꾼 같죠?”

“그럼, 그럼. 제대로 된 화가의 손길이구나.”


현관문은 이제 하얀색에서 묵직한 네이비 색으로 바뀌었다. 흰색일 때는 습기에 곰팡이가 슬었지만, 이번에는 오래도록 중후할 것 같다. 데크도 어두운 갈색에서 연한 브라운으로 바뀌었다. 썩은 나무를 새것으로 바꾸고, 물건들을 치우니 데크 전체가 환해졌다.


그동안 데크 기둥에 걸어두었던 주련도 모두 떼어냈다.

아내는 이참에 과감히 버리자고 했다.

“이런 주련은 요즘 구하기도 힘든데.”

“강촌 집 분위기하고는 안 어울려요.”

“그럼 버리지 말고 어디 한옥에라도 보내자.”

“그래요, 6월 찔레꽃 피면 매원 외가 갈 때 가져가요.”

문득 ‘夫婦和以愛敬(부부화이애경)’이라는 서각이 떠오른다. 이것을 아내는 마뜩잖아했다. 속이 상할 땐 제일 먼저 이 주련부터 떼어내곤 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바깥에 걸어두었는데, 이젠 이 서각 갈 곳이 없다.


점심 무렵, 정서방이 캠핑 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가져온 생김치에 아내가 부친 부추전을 곁들인다. 시원하게 소맥을 한 잔씩 나누며 이야기꽃이 핀다.

“행복이 별건가요. 이렇게 함께 맛있는 것 먹고,

우리 손으로 일하니 이게 행복이지요.”

“그래요, 당신 말대로 이게 바로 행복이죠.

그래서 우리 집 이름이 ‘행복한 집’이잖아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모든 일이 끝이 났다.

핑크빛 대문 너머, 하얀 강촌 집이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오월의 푸른 숲 속,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완성되었다.


강촌에 살고 싶네


노을 진 저녁,

핑크빛 대문 너머

하얀 강촌 집은

푸른 숲에

포근히 안겼다.


지지배배,

곤줄박이가

드나들며

새끼를 돌보는 집


행복한 집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이곳이 어드메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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