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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돈 Nov 24. 2024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한강 디 에센셜>을 읽고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최원돈


한강의 책을 샀다. 제목이 『한강, 디 에센셜』이다. 노벨상을 받기 전인 2022년에 골라 모은 책이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을 따로 쓰겠다.”라고 했다.


장편소설 한 편

단편소설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


산문부터 읽는다.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올린 추모사이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S 출판사의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 교정 교열과 필자 관리 외에도 아침 청소, 복사, 우체국과 은행 심부름 등의 일을 맡고 손님에게 커피를 타는 일도 했다. 커피를 원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녹찻잔을 꺼내 더운물을 채우고 녹차 티백을 담갔다, 색이 우러나면 건져낸 뒤 쟁반에 내갔다.


그 봄날 오후 점심을 들고 온 필자 선생님들에게 몇 잔의 커피를 머그잔에, 녹차는 녹찻잔에 내갔다. 담소가 끝날 무렵 누군가 찻잔을 치우라고 했다. 빈 잔을 들고 나오다가 손에 힘이 풀리면서 녹찻잔을 떨어트려 산산조각이 났다. 그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앉아 조각들을 주우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 늦게 최인호 선생님이 내 책상에 와서 불쑥 물었다.


“많이 힘드니 ”


“그 눈길에 헤아릴 수 없는 따스한 연민이 들어 있어서, 내가 힘든가, 그제야 문득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손에 힘이 풀렸었나. 그 파편들을 빨리 주울 수 없었나. 뭐라 대답할 말이 없을 때 늘 그렇게 했듯,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조금 웃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1993년 2월, 『길 없는 길』의 마지막 교정을 보러 온 그는 그렇듯 거리낌 없는 명랑성을 담아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춘향이가 들어왔네! “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땋고 앉아 교정을 보고 있든 수습사원의 첫인상이 재미있었든지, 내가 퇴사할 때까지 선생님은 기분 좋을 때마다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듬해 1월 내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신문을 가져오라고 했다. 주간실에서 다 읽은 뒤 소감을 들려주셨다.

“참 어두운 이야기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이 어두운 가족이 바다로 소풍을 가는구나. 그게 나는 참 좋더라.”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토요일, 선생님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두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제는 몇 가지 조언들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소설을 맨 앞에 둬야 한다. 그러려면 착하게 살려고만 하면 안 돼, 선의의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투병 중에 선생님이 쓴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던 밤의 전율을 기억한다. 삶과 죽음 사이의 벼랑으로 힘껏 몸을 밀어내, 처절한 정직성으로 움켜쥔 소설, 평생 동안 맨 앞에 두었던 소설이 그를 끌고 나아간 순간들의 기록.


김연수 씨를 통해 출판사로 찾아간 겨울, 방사선 치료 때문에 성대가 상해 작고 칼칼해진 목소리로 선생님은 나를 맞아 주셨다.

“우리 강이가 왔어?”

그날 선생님은 가까운 바다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다. 조개구이를 사주시고, 언덕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도 사주시고, 바람 찬 방파제를 함께 걸었다. 돌아오는 길엔 함명춘 선배에게 오늘 눈이 왔어야 하는데, 중얼거리셨다. 일행들이 화장실에 가서 둘만 남았을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걸 영영 알지 못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인 것처럼 그렇게 반복하셨다.


“그 녹찻잔을 생각한다. 깨어졌어도 아름다운 조각들을 들여다보며 한참 쪼그려 앉아 있었던, 어두운 줄도 모르고 어두웠던 그 시절에, 내 책상을 최인호 선생님이 가볍게 걸어왔던 것을.

‘나는 인생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니?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수필 한 편을 읽어보면 글 쓴 사람의 심성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나는 밤새 한강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어떤 글을 쓸 것 인가를, 나는 이 글을 통해 한강을 알 수 있었다.

한강은 인생이 아름답다는 글을 쓸 것이다. (202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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