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의 서막이 오르기까지 2
뇌파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병원에서는 뇌가 술에 절여진 상태라고 총평했다. 나는 내 뇌가 술에 절여졌다는 말이 재밌었다.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게 재밌었고 친구들에게 '내 뇌가 술에 절여졌대'라고 말을 옮길 때마다 따라오는 걱정 반 경악 반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더욱이 나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문장이었다. 낭떠러지 아래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내가 있는 곳이 물 속이라는 걸 깨달으니 그 모든 절망이 우스워졌다.
어쨌든 그것도 희망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 다닌다고 해서 술을 끊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단주를 채근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점이 과거와 달랐지만, 그마저도 내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끊어지는 일방적이고 불안정한 관계였다. 무엇보다도 세상엔 여전히 저녁이 존재했다. 저녁의 모퉁이에서 늘 술을 마시던 나는 술을 끊고자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변함없이 '나'로 살아가야 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저녁과 내가 공존하는 이상 술에 대한 갈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목구멍에 욱여넣을 대체제를 찾았다. 고맙게도 시중에는 알코올 농도 0.00%을 자랑하는 무알콜 맥주가 판매되고 있었다. 한때는 '술맛만 어설프게 나고 취하지도 않는 음료'로 평가했었는데, 병원에 방문한 뒤 다시 만나니 얼마나 구원 같았던가. 그렇게 술독이 되어버린 나를 술 대신 무알콜 맥주로 채우기 시작했다.
홀로 보내는 저녁이 건강해지는 새, 남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술잔을 들기 좋은 자리가 종종 있었고, 그렇게 단주에 몇 번이고 실패했다. 돈 내고 찾아간 병원에서 '저 이번 주에 술 마셨어요'라고 말하는 일이 반복되자 절제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했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친구를 만나는 족족 알코올 의존증 환자임을 선언하며 술자리 제안을 사전에 차단했다. 불가피한 술자리도 있었지만, 그 자리의 일부 또는 모두가 내 사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단속하게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금주 중'이라고 둘러대며 회식에서 술을 권하는 일이 없게 했다. 곧 스스로를 안전한 울타리에 가두었음이 만족스러웠다.
처방받은 약을 먹는 일도 잊지 않았다. 처음엔 하루 세 번, 곧 하루 두 번씩 약을 먹으며 스스로를 우울의 늪에서 꺼내 따스한 볕에 말렸다. 두 달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깨어있는 생경한 느낌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정신이 또렷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느낌을 받은 게 언제였던가. 내 삶에 최초로 우울증이 찾아온 시점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우울과 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는 시기는 우울이 시작되었을 때나 우울이 깊을 때가 아니라 우울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였다. 그리고 병원에 가기 직전까지 나를 나약한 사람이라고 낮잡아보며 감정을 무시했던 기나긴 시간을 후회했다. '더 일찍 바로잡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더는 우울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부정적인 생각을 금세 끊어낼 수 있었다.
행복을 되찾은 뒤에는 안정적으로 나아갈 일만 있다고 믿었다. 우울에서 행복으로 향하는 지도를 완벽하게 그렸으니, 어쩌다 우울한 감정에 길을 잃어도 언제든 다시 행복을 찾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불면이 찾아왔다. 영원한 행복에서 또다시 쫓겨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