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이번에 그는 어딘가 익숙한 여인의 눈물을 닦아낸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한 참뒤에야 그녀가 눈을 맞춰온다
“레이몬드... 저는......”
비밀이 많은 눈동자 샤를로트는 계속해서 머뭇거린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듣든 레이몬드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느새 라이칸 오스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울려대는 파편에 괴로워 한 채로 움직이고 있다 무의식적인 그의 걸음은 고스트 병실 안으로 직행한다
그는 102호 병실 앞에 멈춘다 맥박이 빠르게 뛴다 그 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머릿속 울림도 차츰 멈추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창백하게 죽어있는 여인이 누워있었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화이트 샤를로트. 그녀다
“맞아 여긴, 시체 보관실이지, 병동에 왜 이런 게 있냐고 하면 나도 말 못 해. 참고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살릴 가능성이 있을 거란 생각은 잠시 접어두길 바라”
등장을 알린 칼립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지 않아? 레이몬드”
“레이몬드 라니, 난...”
그는 레이몬드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앟았다
“저주.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죽음의 문턱,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내야 하리란 것도, 전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들이지. 그러니 잘 생각해 봐, 넌 누구고 왜 여기 있는지”
“고작 계약을 어겨서 생긴 일이라... 윽! 무슨 의미지? 가문이라니...”
“아니지, 레이몬드 백작, 시간이 없어 시겟바늘은 이미 째깍째깍 넘어가고 있다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레이몬드 백작은 간신히 정신을 다잡으러 애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번에 그는 어디로 가게 될까?
‘사랑스러운 당신의 페트리 시에가 파트너 신청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편지에는 그 한 줄이 전부였다 그녀가 누구를 의식하고 보냈는지는 뻔했다 종이 쪼가리에 사치일만큼 화려한 봉투는 보낸 이의 모습을 예측하기 쉬웠다 보통 이런 편지의 내용은 뻔했기 때문에 안 뜯고 버리는 일이 예사였다 그럼에도 뜯은 이유는 그녀의 명망과 위성이 드높은 가문 덕이 컸다
정성스럽게 접은 편지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백작은 집무에 집중했다
백작은 탄신회를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모든 가문이 참석해야 한다는 황제의 공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몬드는 연회복을 착용하고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찰랑거리는 화이트 와인이 층층이 쌓인 테이블이 눈에 띄기 쉽게 조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테라스로 접어들었다 그곳에 먼저 와 있는 여인이 있었다 깊이 있는 눈동자가 티 없이 맑게 빛났다 그녀의 고급진 실크 드레스마저 수수하게 보였다 레이몬드는 초면에 무례할 정도로 넋 놓고 있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멈춘 것 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마법인 것 양 둘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달빛아래에서 벚꽃이 흩날렸다
“자네 그거, 사랑이야. 이를테면 한눈에 반했다라고 하는 것이지”
그 말을 한 필립은 진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것보다 심오해”
레이몬드는 친구의 이야기에 심각하게 고개를 저었다.
“에~이 척 보면 모르나? 이런이런 연애 고자 같으니라고”
“연애 대선배가 알려두지, 그다음엔 춤 신청을 하는 거야”
“그럴 필요 없어, 금방 식을 테니”
레이몬드는 덤덤하게 답했다 무엇보다 어중간한 심정으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필립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보게 그게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줄 알아?”
“쓸데없는 대화는 관두지”
“하나만 알아두자 페트리시에 영애에게 할 예정이라면”
“필립, 방금 한 말을 반복하게 만들지 마”
“그래 친구 자네에게도 머지않아 봄이 오겠어, 그럼 난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필립은 멀어져 가는 레이몬드의 등을 저만치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늘 하던 모습대로 네 친구로서 지켜보겠지, 모든 세상을 모든 결정들을.... 문득 지금의 결과를 보고도 난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인가 궁금해지네, 뭐 답은 뻔하지만”
필립은 이번에 다른 쪽을 쳐다보았다
“현실과 한낱 꿈일 뿐 세간에 떠도는 허풍은 진실의 교차점에서 입에서 전달하는 언어의 영역은 속세에 들이찬 거짓된 도출된 결과를 만들어내지. 나는 도달하는 자가 아니다 그러니 진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아름다운 미소로 모두를 홀리는 최고 미녀 트리올렛가의 페트리시에는 만인의 첫사랑이었다 하나같이 첫사랑으로만 남아있는 이유는 그녀의 성정은 유명했다
페트리에 시에 가 레이몬드에게 꾸준히 구애를 하는 이유는 사랑이 아닌 그를 짝사랑했던 다른 여인들의 탄식을 즐기는 악랄한 취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인들은 레이몬드의 백작의 눈이 높다는 것을 예감하고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페트리시에는 뒷거래를 하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모든 행동의 사유는 쾌락에 속했다 레이몬드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쾌락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페트리시에의 거래요청을 거절할 셈이었다
레이몬드는 탑처럼 쌓인 와인을 들어 목을 축였다
“아”
그제야 서로를 의식한 듯 어색한 침묵을 깨고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실례했네요 좀 갑갑해서”
평소의 그러면 절대 하지 않을 충동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나갈래요?”
“... 네?”
“저도 마침 갑갑하던 참이라서”
둘을 파티홀 밖으로 나가 앞에 놓인 장미정원으로 들어갔다
“와 밤 산책이 아름답네요”
“이건 파샤의 장미라 일 컸는 특수한 유전자 변종이지요, 잎 안쪽으로 독성이 잇으니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작은 걸요”
“소량의 독성만 묻어도 치명적이죠, 몸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샤를로트가 실소를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레이몬드 백작님께서 작은 잎을 피하시는 상상에 저도 모르게 그만... 앗!”
눈을 휘어 접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괜찮습니다”
‘그대라면’ 레이몬드는 뒷 말을 삼켰다
그날 이후 그곳은 둘만의 비밀 접선암호가 되었다 종종 몰래 밀회를 가졌고 점차 사이는 발전해 갔다 레이몬드는 그녀에게 품은 감정이 가벼운 연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샤를로트가 정부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