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제어 수업

감정을 버린 삶이라 불린다

by 필제

우리는 작은 교실 안에 모여서 감정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는 건 징징대느니만 못 한 거야, 너희도 징징거리면 싫지? 싫은 건 하지 말자"


"화내는 건 민폐야, 사람들에게 피해만 줘서, 잘못하면 사회 낙오자로 찍히는 거야, 외톨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 화내면 안 돼"


"웃음은 필요하지 않아, 가식적이라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그러니 웃지 마, 무표정이면 충분해"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어느새부턴가 감정제어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만든 것인지, 이런 것을 왜 배우는 것인지란 의문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세뇌교육이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전 기억을 잃은 채 이곳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잃었다고 다른 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제게 담당 보조를 붙여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트로이반, 매우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표정은 어찌나 차갑던지 마주칠 때마다 긴장되기 그지없지요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때에도 가끔씩 이상하게 울고 있다든가 웃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분명 무표정하게 있었는데 말입니다.

트로이반은 그런 제게 맘껏 풀라고 말해줬습니다. 첫인상과는 달리, 꽤 다정한 녀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만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다른 아이들은 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합니다. 무표정을 짓는 게 어렵냐는 마냥 말이죠.


오직 트로이반 만이 저를 챙겨주었습니다. 맘껏 울라고 말이죠. 우리 둘끼리만 아는 비밀통로가 있는데, 그날 그곳에서 난 이상하리만치 펑펑 울었습니다. 슬픈 일도 없는데, 감정이 벅차올라 감당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날은 꽤나 많이 위로가 되었답니다



예상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전 모든 사태가 끝이 나고야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방금 전 제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단 사실을 들켰습니다. 감정 제어 장치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거든요.

전 곧장 괴물이 살고 있는 지하실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죽을 뻔했지만 트로이반의 희생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잃어버린 제 기억도 일부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트로이반은 감정제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저와 알던 사이였습니다. 그는 종종 제가 하는 일을 비웃거나 시비 걸기에 바빴죠. 지금의 무뚝뚝하고 차분한 그와는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나 감정 제어 수업을 받은 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만, 그가 저를 구해주러 왔을 때 저를 문 밖으로 밀쳐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네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감정 제어 수업을 받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한 짓이 잘 못 되었단 걸 알아, 진심으로 미안해."


트로이반은 괴물이 있는 감옥밖으로 저를 꺼낸 뒤 대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 지금 그의 말대로 감정 제어 교육을 고발하려 합니다. 이 일이 마무리된다면 그다음엔 감정 통제 수업을 받지 않았던 날들로 돌아가겠지요.


예컨대, 일부 감정을 통제하는 일은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일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억제하고 싶진 않습니다. 전 맘껏 울고, 화내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정표현은 인간의 표현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사람들은 모두 병들어버릴 겁니다.


그러니 제가 바꿀 겁니다. 당장은 막막해 안 보이겠지만, 언젠가는 맘껏 울고, 화내고, 웃을 수 있는 세상으로요.


외전


눈앞의 괴물이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트로이반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괴물의 입천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생각한 자신의 운명이었다 그에게 평생의 죄란,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의 비겁자인 자신이었다 이젠 그 죄업을 씻어 내리고 싶었다

이제, 그만.

얼마나 많은 손들이 그의 목구멍을 눌러 닫았는지 모른다. 변명하지 말란 말로 입을 닫게 만들고, 비난을 받았던 날들에 마음속으로 수십 번의 사과를 망설이고도 내뱉지 못했다. 단언컨대, 그건 모두 자신의 죄였다. 필시 찢겨버린 자신의 시체에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할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사실 아직도 두렵다. 그러나 저 뾰족한 이빨이 자신의 피부를 꿰뚫을 때는 너무나 기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까


환하게


그리고 그 애는 아마 자신이라는 악당이 사라진 세계에서 행복한 결말을 이뤄낼 것이다. 스스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겠지


그곳은 아주 완전한 것들로 이루어진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일 것이다. 그때가 오면 머지않아 봄꽃이 다시 피고, 푸른 싹이 땅 위로 돋아나겠지.


그래 난 알고 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저 봄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이었단 걸.


길고 길었던 겨울의 눈밭이 녹고 따스한 태양볓이 비쳐올 때즈음 나뭇가지에서 작고 아름다운 꽃잎 한 쌍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피어났다.


멀고도 먼 길이었다. 눈먼 귀신은 제 앞에 있는 하나의 들꽃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한번 피어난 봄꽃이 무참히 짓밟히는 일이 있더라도, 쉽사리 접어들지 않을 것이란 것을 그는 알았다


그렇게 그는 이승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