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지배당한 세상

by 필제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예전부터 몇 주에 한 번씩 나타나던 악몽을 오늘 다시 꾸었다 난 오늘 날짜를 표시했다.

7.4 , 7. 10 , 7.11 오늘로 총 3일이었다

그래서 꿈의 내용이 무엇이었느냐고? 가족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이들이 내게 저주를 뱉어내는 내용이었다. 꿈속에서 그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혀있었다. 영혼을 목숨처럼 내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때문이야, 네가 우리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야, 전부 네 탓이야!!, 왜 그랬어?!! 왜?!!!"


악마에 잡아먹혔다느니, 사로잡혔냐느니,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우선 할까 한다


내 이름은 데이비드 펄슨, 유일한 가족이라면 어렸을 적부터 친구로 지낸 이들이다.


그들은 각자 세리프, 케인, 빌룬드, 아일라, 헤일리로 나까지 합해 총 여섯 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혀의 세 종족으로 악마의 목소리에 홀린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공생 관계에 불과해 보이지만, 우리는 그저 노예일 뿐이다. 끝없이 많은 사람들을 하루하루 밤새도록 치료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우리들이 어째서 그들의 포로가 되어 있냐고? 그건 그들의 협박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우리 종족은 치유능력이 강하게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나머지 능력은 제로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우리보다 힘이 100배는 강력할 뿐 아니라 최적화된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어쨌든 이것으로 내 소개를 마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난 악몽을 꾼 뒤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오늘 내가 늦잠을 잤다는 것을 말이다. 난 당장 사람들을 치료하려 급하게 센터로 달려갔다. 다행히 치료센터는 3분 거리였기에 생각보다 늦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료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곧장 문이 열렸다.

세리프, 케인, 빌룬드, 아일라, 헤일리는 눈앞에 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데이비드가 늦네?"


"어라..? 분명 오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혀의 세 종족은 기척에 민감하니까"


"하긴"


일순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았다 순간 뒤에서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죽었다"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 그제야 내 죽음을 깨달았다.


그건 마


서글프고,


허망하여,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세리프, 케인, 빌룬드, 아일라, 헤일리한테도 고맙고 미안하다고 아직 말 못 했는데... 해준 것도 없는데,..."


죄송하고, 송구스럽기 그지없어서


"말 못 했는데, 악마의 목소리에 시달리는 환자분들께 죄송하다고, 치료가 미숙해서 죄송하고, 무책임하게 가버려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데"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눈가를 비비고 보고, 다시 보아도 저승사자의 그림자만이 더욱 또렷이 보일 뿐이었다


"작별할 시간을 주겠다. 단 본래의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


"기간은 하루"


그런 나에게 저승사자는 통보를 하고는 사라졌다. 어느새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금세 날씨는 비가 세찬 바람을 몰고 왔다


"괜찮으세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세리프가 나를 향해 걱정스레 묻고 있었다

비를 홀딱 맞은 몸을 위해 우산을 씌어준 채로 말이다

세심한 성격에 사람을 잘 파악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 "


"당신과 닮은 누군가가 생각나서요"


"흠 그래요? 어떤 사람인 가요?"


"세심하며, 다정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버릇이 있죠"


"하하 과찬이시군요"


"그보다 제 소개를 안 한 것 같네요, 전 다유트 라 합니다"


"허의세 종족 치료사 세리프입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머물다 가세요"


그가 앞에 있는 치료센터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생각해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꿈속 내용처럼 이들이 악마화가 된다면 그전에 막아야 한다. 난 곧장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순간 누군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선생님? 선생님이 신가요?"

대부분의 환자는 이곳에서 우리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리고 방금 목소리는 앞이 안 보이는 환자였다.


"예, 전 데이비드라 합니다"


"뭐라 운을 떼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흰 선생님들께 매번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누군가 당신들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선생님들이 악마화가 된다면 기꺼이 나서서 치료해주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여길 만큼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 새 삷을 살 수 있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선생님이 하신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은 저의 내면뿐 아니라, 현실의 삷을 바꿨어요, 실은 전부터 말하고 싶었지요, 고난과 역경에 힘들어하는 날들에 매번 저희를 치료하러 와 줘서, 감사하다고요. 과거, 전 두 눈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었죠, 그때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전 다신 살아있음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은혜를 값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다음 진료를 해야 해서요"


생각해 보니, 내 존재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뿐이었다. 무엇보다 난 이미 한번 죽은 몸이니까 말이다. 이 도시를 빠져나가는데 하루가 꼬박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완전한 죽음을 얻을 것이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눈앞에 저승사자가 보였다


"그러라고 준 기회가 아닐 터"


"내가 일찍이 죽는 게,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뭐지?"


"허황된 꿈 내용에 연연하는 일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하루가 다 지나지 않았음에도 저승사자는 날 저승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난 그의 안내를 묵묵히 따라갔다


*

외전


세리프는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하나의 답에 도달한 듯 걸음을 멈춰 섰다


"데이비드..?"

그 빗속을 거닐고 있던 그 청년의 무의식에 나오는 버릇, 걸음걸이, 말투까지 아무리 보아도 데이비드가 생각났다


"왜 그래?"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헤일리가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는 뛰쳐나갔다


단언컨대 그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렸으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지는 아마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 있어?, 지금의 넌 어디로 가고 있어?'


그가 센터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헤일리가 막아섰다


"그만해, 데이비드한테 이 정도로 신경 쓸 시간은 없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는 것 같네"


"우리가 분열되지 않길 바랐다면, 그분의 뜻을 반대할 준비를 하면 안됐어. 데이비드는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거야"


"전부.... 알고 있던 거야?"


".... 그래"


"........."


"이대로 나가는 건 헛수고야, 데이비드는 죽었어! 이미 죽었다고, 그분께 물어보지 그래?!"


외전 2


대통령은 긴 정적을 깼다


"그를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뭐..?!"


"악마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죽게 버려두실 겁니까? 그러십시오.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으니까"


대통령의 웃음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혀의 세 종족 대표로 참석한 세리프는 이를 부득 갈았다


"뭐 하나 잘난 게 있으시다고 난리를 치십니까? 피를 더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세리프는 머리를 짚었다


"데이비드는 혼자 전부 짊어지려고 했을 텐데, 넌 그때 실컷 잠만 자고 있었지"


순간 악마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그가 고문당할 때도, 맘 편히 쉬고 있었네"


".... 그만해, "


"심지어 진실을 알았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난... 사람들을 치료하는....."


"가족의 죽음보다 얼굴도 모르는 남의 생사가 더 중요해?"


"하긴 넌 그를 얕보고 있었지, 데이비드의 안위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욱 소중히 여길 만큼"


"그만하라니까!!"


"그리고 넌 어쩠지? 알고 있을 때에도 모르고 있을 때에도 모두 네 가족을 구하지 못했네"


"사실 너도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지? 다만 희생자가 네가 되기 두려워 망설인 것뿐이지"


세리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불쑥 내뱉었다

"알고 있었어. 그가 고문당하리란 것도 예상 못한 수순은 아니었지,.... 내가 좀 더 제대로 잘했더라면.... 아니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순간 세리프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고 말았음을 알았다


"만일에 내가, 이 순간이 오리란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 때문이야, 내가..."

순식간에 세리프는 악마에게 사로잡혔다


케인도, 빌룬드도, 아일라도, 헤일리 마저도 모두 악마에게 사로잡혔다. 악마의 꾀에 넘어갔다. 세상을 치유할 인류는 남아있지 않았다


최초이자 최후의 악마, 대통령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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