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마가 시작될 때

by 이 원

장마가 시작될 때,

그때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모든 의무와 조건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나만 존재하는 곳.

그곳에서 나는 그 어부와 이야기합니다.


순수함을 파는,

아니 그 모두에게 순수함을 주는 그 어부는

오늘도 물 잔을 닦으며

책 속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이내 비는 장대처럼 내리고

이 내 가슴에 흙 내음이 스며들 때,

커피 향이 눈을 울릴 때에,

그 사내는

책의 꽃을 피웁니다.

그곳의 손님들도 그러합니다.


저 하늘에,

누군가의 꿈이 가득 차 있어서

그 자리가 너무 촘촘해 떨어진

또 누군가의 꿈들이

벚꽃잎에 갇혀 있다가

3일 채 되지 않아

봄비 맞아 낙화할 적에,

그 떨어진 꽃잎을 모아

커피잔에 올려 나눠 마시는 그들.

그렇게 꽃잎을 하늘로 올려주는 그들은

오늘도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오늘은 그러합니다.

내일도 그러합니다.


나는 바랍니다.

봄 햇살처럼 포근한,

여름 이슬처럼 싱그러운,

가을바람처럼 그리운

겨울 첫눈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이 되기를,

또 언젠가 나도,

지친 누군가를

하늘에 올려주기를.

카페 “장마가 시작될 때”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