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소대나무
'자존감의 상실'은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이자 가장 하고싶은 말이다. 기업에서 당신을 탈락시키는 이유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절, IBK기업은행 연수원에서 ‘모소대나무’라는 주제로 광고가 나왔다. 아직 양지를 보지 못한 기업들에게 기업은행이 힘이 된다는 모토의 내용이었다. 이 광고를 보고 취준생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소대나무는 4년 동안 겨우 3cm가 자랄 정도로 멈춰 있다가, 5년 째가 되면 매일 30cm 씩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키운 사람은 그렇게 될 줄 알았기에 하나도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모소대나무이다. 여러분들이 이 힘든 시기를 지나 마침내 원하는 기업에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필자 또한 모소대나무처럼 겨우 3cm 밖에 자라지 않는 시기를 견뎠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투브에 잡코리아 채널을 가보면 ‘우리는 끝을 준비합니다.’ 라는 광고 영상이 있다. 취준을 하면서 이 영상을 보고 많이 울었다. ‘합격’이라는 이 짧은 한 마디를 위해, 이제는 직장인이 되었을 그들의 표정에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지침, 기다림이 담겨있다.
살아오면서 이토록 잔인한 신분이 되었던 적이 없다.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별 볼일 없었으며, 해야 할 건 많지만 뭘 해야 할 지 몰랐다. 거절은 잦았지만 이유를 몰랐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았다. 내가 잘못된 방향을 향해 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지만 취준 당시 나는 사소한 열등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 두 번의 인턴과 한 번의 국비교육, 세개의 자격증을 따고 나서야 원하는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스펙들은 결코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없었기에 고통을 받는 시간은 상당히 지속되었다.
(합격에 최적화된 스펙을 쌓는 전략은 뒷 장에서 얘기하겠다.)
1년 정도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첫 취업준비는 고시를 그만두고 곧바로 시도했기에 자존감은 더욱 낮아져 있었다. 교환학생을 포함하여 3학년을 마친 나는 졸업을 두 학기만 남겨둔 채 고시를 준비했었다. 내가 겪었던 '고시 실패'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겪는 '공백기'와 유사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포부를 갖고 시작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만 날린 형상이 되었다.
고시를 포기하고 돌아오니 나를 먼저 반긴 건 대학 동기들의 취업 소식, 그리고 자격증과 스펙을 쌓느라 정신없는 후배들이었다. '조금 늦어도 되니 여러 경험을 해보세요' 라는 유명 강연의 문장은 너무 쓰리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보는 시선은 '아직 정신 못 차린 애', '시간 낭비하고 돌아온 복학생' 이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친구들을 따라 자소서도 써봤지만 좋은 답은 받지 못했다.
한 번, 두 번 탈락을 통보받을 때 마다 서서히 자존감을 잃어갔으며, 문득 내가 정작 사회에 필요한 사람인지 의심까지 들었다.
내가 취준을 위해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은 LG CNS라는 회사의 인턴이었다. 통계를 전공하여 학부시절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아 관련 활동을 주로 했었다. 회사는 '빅데이터'라는 직무를 채용했고, 필요 역량에 내가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당연히 붙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인턴이니까’라고 얕잡아 본 것도 있었다. 요즘은 인턴 자리가 없어 금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과는 당연히 서류 탈락이었다.
첫 서류에 탈락하고 수 차례 인턴 자리를 알아봤지만 전부 탈락했다. 3학년이 될 동안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한심하게 보내지는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019년 겨울 마지막으로 SAS라는 통계소프트웨어 회사에 지원하고 운 좋게 서류를 통과하여 면접에 갈 수 있었다.
서류전형은 SAS라는 회사가 주최한 데이터 분석 공모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어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공모전 입상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공모전 평가 점수에서 우리 팀은 0점을 받았다. 결과를 제출하기 직전까지 우리 팀은 이를 알고 있었고 사실상 꼴찌였다. 다만 우리 팀이 두 달 동안 너무나 힘들게 고생했기에, 노력했던 과정을 PPT에 담아 결과물을 제출했다. 대학 생활 첫 공모전이었고 참가에 의의를 다했으니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가 발표되던 날, “이 번 공모전에선 기존에 없던 '입선'도 추가했습니다. 공모전에 지원하고 최선을 다했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한 팀을 위해 이 상을 드리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받았다. 우리를 위한 상이었고, 운이 정말 좋았다.
운 좋게 서류에 통과하고 겪은 첫 인턴 면접은 최악이었다. 영어 면접이 있었는데, 교환학생을 갔다와 영어에 자신 있다고 생각함에도, 첫 면접은 긴장되어 답변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버렸다. 결국 면접관으로부터 면접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면까몰’(면접은 까기 전까지 모른다.) 라는 유행어가 있다. 공교롭게도 나를 뽑아준 건 면접관도 아니었고, 공모전을 시상한 마케팅 부서 부장님도 아니었으며, 면접관으로 참여하지 않은 기술팀장 권기철 상무님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지원하지 않는 다른 부서에서 합격 카드를 준 것이다.
나중에 정말 궁금해서 왜 저를 뽑았는지 상무님께 여쭤보니, 자소서에 간절함이 담겨있어서 뽑았다고 한다. 자신이 면접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직접 얼굴을 본 것도 아니었지만, 직무와 관련된 여러 경험을 나열하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간절히 적은 자소서가 인상 깊었다고 한다.
이렇게 겨우 1cm 가 자란 것이다. 우리가 자소서에 적는 한 줄 한 줄 스펙은, 단순히 한 줄이 아니라 우리들의 열정과 청춘이 담겨있다. 언젠가 ‘자소서에 한 줄 쓰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나는 모소대나무 였는데, 당시에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모소대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