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 문지혁 [초급 한국어]
1.
사랑하냐는 질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얼만큼 사랑하냐는 질문에는 어떤 말도 내 진심을 다 담지 못할 것 같아, 차라리 말하기 싫을 만큼 사랑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내게 있다. 나와 함께 한 방에서 자라온 친누나. 그 누나가 이제 새 생명을 품고, 세상을 처음 만나는 아이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누군가의 방이 되어주는 사람이 된 누나의 모습이 참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건강하게 태어나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조카가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겨우 80일밖에 살지 않았지만, 벌써 바다를 닮은 사랑을 우리 가족에게 퍼뜨리고 있는 아기. 그 모습을 보며 다시 깨닫는다. 사랑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나는 엄마가 되었고, 매형은 아빠가 되었고,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엄마는 외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삼촌이 되었다. 조금 어색하지만 듣기 좋은 그 명칭을 이 작고도 귀한 아기가 우리 모두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짐한다. 너의 하루가 언제나 안녕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너의 일상에 기분 좋은 안부를 건넬 수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겠다고. 사랑하겠다고. 값없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를 통해 믿겠다고. 우리의 세상, 모든 곳에 너를 초대하겠다고. 하고 싶은 말을 모으고 또 모아, 진심을 가득 담아 너에게 인사한다.
안녕, 하람아.
너는 우리의 새 계절이야.
2.
파도가 치니 그곳이 바다임을 알았다.
하늘을 가리고 풀냄새가 나니 그곳이 숲임을 알았다.
우산을 피는 사람, 머리를 손으로 허겁지겁 가리는 사람.
이곳이 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파도가 밀려와야 비로소 바다임을 알 수 있듯이
풀냄새가 숲의 존재여부를 설명하듯
의미없다고 생각한 내 사랑이 내 존재를 설명해주고 있구나.
내 사랑에 안부를 묻는다, 다행이 당신은 안녕한가.
3.
사랑의 실패를 선물한 네가 나에게 안부를 빌어준다.
안녕, 잘 지내고 몸 잘 챙겨.
나는 어떻게 받아야하나.
아무일도 없었듯이 '그래 너도 잘 지내.'
너에게 느끼는 배신감을 가지고 '진짜 실망이다.'
사랑의 실패를 슬퍼하며 '그러지마...'
어떤 대답을 해야하나.
누군가에게 생기는 기대라는 감정은 참 무섭다.
기대가 생긴다는 건 아픈거다.
아픈걸 알면서도 시작하고 싶은 결단을 우린 사랑이라 말한다.
겁쟁이인 나에게 결단을 불어넣어줬던 존재니깐.
역시나 기대는 아픈거라는 걸 알려준 존재니깐.
말보다 먼저 정리되는 건 언제나 마음이다.
진심을 담아 모든 대답을 회피하고, 말을 건넨다.
'안녕, 나 먼저 일어날게.'
4.
안녕.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주는 말.
서로의 안부를 묻기 어려워지는 시대 속에
절실히 안녕을 잘하고 싶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무심하게 흘려보내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들과,
인사하고, 작별하고 싶다.
시작의 새로움
마지막의 아쉬움
시작의 고마움
마지막의 슬픔
그렇게 일상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관계의 시작과 끝을
안녕이라는 단어 아래에 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