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누구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꽉 막힌 고속도로.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누나와 나란히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듣는다. 지루한 시간을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종착지에 다다르고 그곳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계시는 ‘원주댁’이 있다. 점점 사라지는 높은 건물들, 멀리서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 햇살을 머금고 자라는 구황작물들과 정성껏 가꿔놓으신 밭이 있는 곳.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는 증조할아버지, 허리가 조금 불편하신 증조할머니. 하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반겨주시던 두 분. 그 눈빛엔 막 피어난 새싹처럼 생기 가득한 우리 증손들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집 옆 텃밭 곁엔 세월을 머금은 단독주택이 있다. 그 집엔 화장실이 없고,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뒷간이 있었다. 어린 우리에게는 무서운 공간. “자다가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하며 잠들던 밤도 있었다. 마당엔 풀밭이 있고, 풀밭엔 작은 생명들이 가득했다. 밤이면 전봇대 하나 없는 그 집 주위엔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명절이면 사촌들이 모두 모여 잘 곳이 부족해 누나, 사촌동생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잠을 청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신은 잠을 포기하고 밤을 지새우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난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자란 내게 그 모든 것은 어색하면서도 신기하고, 참 좋았다.
전봇대 하나 없는 깜깜한 밤, 새벽을 깨우는 닭과 소의 울음소리, 근처 하천과 이어진 맑은 물이 흐르는 물가. 가을이면 가족들과 함께 뒷산에 올라 밤을 따고, 사촌동생과 종이배를 접어 강에 띄우기도 했다. 그 배를 따라 걷던 발걸음, 밤하늘 아래 온 가족이 함께 걸으며 바라보던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어린이 민창이는 지금도 여전히 원주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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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원주.
여전히 시간을 머금은 시골집이 그 자리에 있다.
“아빠, 여기 흐르던 물길은 어디 갔어요?”
“근처에 큰 공사가 있었나 봐. 그래서 이쪽 물가들이 다 막혔대.”
“아빠, 우리 뒷산 올라가요!”
“이제 못 올라가. 저쪽에 공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대.”
예전처럼 원주 특유의 흙냄새와 시골의 공기는 여전하지만,
한때 나에게 놀이터였던 장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게 참 아쉬웠다.
“할아버지가 이제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집 안에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대.”
밤에 귀찮게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 그건 좀 좋다.
하지만 어릴 적 그 ‘뒷간의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마당에서 뛰놀던 곤충들이 이젠 별 흥미를 끌지 않고,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청소년이 된 민창이는, 조금씩 변해가는 원주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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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 밥 먹으니깐 맛있네요 엄마"
"이거 원주 쌀이야"
"할아버지가 또 보내셨어?"
"그럼 항상 보내시지. 진짜 대단하신 거야 엄마 시집 오기 전부터 보내셨다는데,
평생을 자손들한테 쌀 보내시는 거야."
"진짜 대단하신 거 같아 할아버지.."
엄마와 원주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았던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갔을 때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이렇게 아침인사를 하셨다.
"원주할아버지 돌아가셨대."
분주하게 준비하는 아빠엄마.
"지금 원주 가는거야?"
"응 가야지. 너는?"
"나 오늘 사역있는데.. 끝나고 혼자서라도 갈게."
"그럼 바로 오지말고, 내일 고모부랑 같이 와."
원주가는 그 길가에는 비가 정말 많이 왔다. 비를 헤치며 원주를 가는 길가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조카와 100년의 세월정도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의 삶은 어떠셨을까.'
그분이 걸어온 인생의 길 위에서 하늘이, 할아버지가 맺었던 수많은 관계를 대신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추락하듯 쏟아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자리를 시키시는 어른들에게 인사드리고, 오랜만에 할아버지께 인사드렸다.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쌀 맛있게 먹고 있다고, 최근에 원주갔다오신 아빠가 사 온 옥수수가 맛있었다고,
하늘에서 먼저 가신 우리 친할머니 만나셨는지, 27살의 제가 아직도 할아버지껜 새싹인지, 언제든지 원주를 놀러갈때 마다 반갑게 사랑으로 환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27살의 민창이는 원주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이 자손들에게 흘리는 할아버지의 사랑이셨음을 이제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