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종강이 얼마 안 남고 간신히 학교와 집을 오고 간다. 개강했을 때와 달리 나뭇잎을 떨어트린 나무들을 보며 나도 종강하고 쉼을 누리는 하루하루를 상상해 본다. 청소년 상담수업에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자고 말씀하시고 학생들에게 검사지를 주셨다. 제목은 '감정표현하기' 감정 단어 옆에 표정을 그리고 그 감정과 어울리는 색채를 표시하고 어떨 때 느끼는지 쓰는 설문지였다. 분노, 우울, 슬픔, 기쁨, 사랑. 분노는 열정적인 빨강과 차분한 파란색을 섞고, 우울은 검정을 색칠하고 슬픔은 검정과 파란색. 기쁨은 녹색, 사랑은 빨강과 노란색을 칠했다.
분노는 정당하지 못한 걸 마주칠 때 느끼고, 우울은 모든 순간에 얕은 베이스로 깔려있다고 생각하고, 기쁨은 나무를 보고 쉼을 느낄 때 느끼며, 사랑은 사랑하는 이성이 생겼을 때와 편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느낀다.
근데, 슬픔은 글쎄... 슬픈 영화를 볼 때? 글쎄 사실 영화를 봐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질 때도 '슬프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다른 감정들의 표정은 잘 그렸다. 분노는 눈썹을 찍찍 그리고, 기쁨과 사랑에는 눈웃음을 그리고 우울에는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그렸다. 근데, 슬픔은 어떤 표정일까. 아니, 애초에 슬픔에 표정이 정해져 있을까. 옆에 있는 친구들이 그린 슬픈 표정을 슬쩍 봤다. 눈물을 흘리며, 당장이라고 펑펑 울 것만 같은 표정 마치, 뚫린 구멍을 막고 있지만 틈 사이에 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손등을 닮은 표정. 그게 슬픈 표정인가.
정말 모르겠다, 슬픔 감정이 뭔지. 생각해 보면 나는 슬퍼해야 하는 상황에 웃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고, 괜찮아야만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슬픔은 감정보다는 이겨내야 하는 상황으로 늘 다가왔던 거 같다. 슬프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많은 어린 나에게 울지 말라고,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릴 때 나에게는 슬픔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슬픔을 까먹은 삶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슬픔을 잃어버린 삶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다.
나에게도 슬픔이가 위로를 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위로가 아닌 내 안의 슬픔이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