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우리 학교 학생회관 뒤편에는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있다. 큰 공간은 아니지만 가운데 나무 하나가 있고 나무로 된 의자들이 있는 이곳은, 인천과 서울을 통학하며 지쳐있는 나에게 늘 쉼을 주는 공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 장소로 갔다. 그리고, 이제 종강이니 당분간은 볼 수 없는 나무를 봤다. 잎사귀 하나 없는 꾸밈없이 본인의 본모습을 보이고 있는 나무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만개한 나무처럼 보였다.
잎사귀 하나 없이 본인을 꾸몄던 모든 나뭇잎을 떨어트린 나무는 비로소 자신을 마주했다. 봄에는 새싹을 피우고, 여름에는 푸르른 잎으로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었던 시간들이 모두 지나갔다. 그 화려한 순간들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았고, 지금의 나무는 온전히 자신의 본질만을 품고 있었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텅 빈 가지들은 오히려 나무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꾸미지 않은 채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기.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다른 계절에는 잎과 꽃, 열매로 치장할 수 있었기에 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고, 가끔은 그 모습들이 진정 내 모습이라 생각했다. 채워짐이 있으면 비워짐이 있듯 겨울이 오자, 나무는 자신의 본모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야 비로소 만개할 수 있었다. 이 나무의 꽃은 일반적인 꽃과는 달랐다. 색색의 화려함 대신, 투명한 차분함으로 빛났다. 그것은 눈처럼 가볍고, 차갑지만 따뜻했다. 나뭇가지 끝에 피어난 꽃들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완벽하게 자신만의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무엇을 감추거나, 보여주기 위해 꾸미지 않아도 됐다. 그 자체로 충분했으니까.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며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의 시대. 하지만, 잎을 모두 떨구고 나서야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시선이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진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겨울의 나무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 꽃인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고파 만개한 화려한 꽃잎들이 꽃인가. 아님, 잎을 모두 떨구고 진정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것에 스스로 인정한 나뭇가지가 아름다운 꽃인가.